박근혜가 남긴 업적

촛불시위로 박근혜 대통령은 그토록 염원하던 국민 대통합을 이루어냈다. 물론 가장 큰 업적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새삼 깨닫게 해준 점이다. 시민들의 평화로운 의사 표시가 갖는 힘과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 점도 업적이다.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박근혜 즉각 퇴진'과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 신뢰와 자격을 잃은 대통령이 대통령 행세를 하는 것을 하루도 못 참겠으니 당장 내려와 사법 절차에 따라 죄에 합당한 벌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들이 우선 바라는 것은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한 사법적 정의의 실현이었다.

2016-12-07     배명복
ⓒ연합뉴스

 분명 그건 꿈이 아니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인파를 난 본 일이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 때 서울광장에도 있어 보고, 1987년 시민항쟁 때 넥타이 부대에 섞여 구호도 외쳐 보고, 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회에서 홈팀이 우승한 날 파리 샹젤리제에도 있어 보고, '아랍의 봄' 당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도 있어 봤지만 어떤 경우도 이 정도 인파는 아니었다. 조계사 앞을 지나온 촛불 군중과 안국동 쪽에서 온 촛불 군중이 인사동 입구에서 만나 거대한 불줄기를 이루며 청와대 쪽으로 향하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6주째 주말마다 계속된 촛불시위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해외 언론은 그 많은 인파가 모였음에도 사고 한 건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는 데 관심을 넘어 신기함을 보이고 있다. 주변 상점들은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유리창 한 장 깨진 게 없고, 쓰레기 하나 남은 것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최루탄과 물대포가 등장하고, 약탈과 방화가 난무하는 여느 시위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촛불시위로 박근혜 대통령은 그토록 염원하던 국민 대통합을 이루어냈다. 한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업적도 남겼다. 위기에 처한 세계 민주주의에 한국형 촛불시위는 새로운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영화·드라마·뮤지컬·소설 등 각종 장르에 걸쳐 자신이 주연 또는 조연으로 등장할 수많은 문화 콘텐트가 쏟아질 수 있게 해준 것도 업적이다. 잘하면 한류의 새로운 '대박 상품'으로 자리 잡으며 두고두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 모른다. 물론 가장 큰 업적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새삼 깨닫게 해준 점이다. 시민들의 평화로운 의사 표시가 갖는 힘과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 점도 업적이다. 그래서 세상일에는 양면이 있고, 위기는 기회와 통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촛불이 꺼진 다음 어떤 세상을 만드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생각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은 특권이 통하지 않는 세상, 열심히 노력하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잘살 수 있는 세상, 부모 잘못 만나도 노력하면 언젠가 작은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 빈부격차가 터무니없이 크지 않은 세상,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세상,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는 세상, 검찰을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세상 아닐까.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