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청문회는 왜 이렇게 찌질한가

노무현은 순직 노동자와 관련됐던 풍산금속 회장 신문 외에는 큰 소리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말투도 위압적이지 않았다. 추궁이라기보다 대화를 나누듯 차근차근 질문을 하고 작은 사실들을 확인한 끝에 증인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외통수로 몰려 어쩔 수 없이 시인하게 만드는 장면을 여러 번 연출했다. 보는 사람으로서는 기가 막히게 잘 짜여진 법정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그 뒤로는 노무현만큼 청문회를 화려하게 장식한 의원은 없었다. 그 원인은 의원의 자질보다는 청문회 운영방식에 있다. 그중에서도 1인당 발언시간이 가장 큰 문제다.

2016-12-07     고일석
ⓒ노무현재단

노무현의 청문회로 동영상을 검색하면 정주영, 대림회장, 풍산회장, 장세동 정도에 대한 동영상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동영상으로 확인되는 부분보다 일해재단에 직접 관여했던 장세동을 비롯한 전두환 측 관계자들의 신문에서 더 빛을 발했다.

추궁이라기보다 대화를 나누듯 차근차근 질문을 하고 작은 사실들을 확인한 끝에 증인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외통수로 몰려 어쩔 수 없이 시인하게 만드는 장면을 여러 번 연출했다.

그의 신문이 워낙 빛을 발하자 소속 당이었던 통일민주당의 동료의원은 자기 질문 시간을 노무현에게 넘기기도 하는 한편으로 그가 너무 뜨는 것을 시기한 다른 의원들이 질문 도중 갖은 방해를 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노무현만큼 청문회를 화려하게 장식한 의원은 없었다.

원인은 의원의 자질보다는 청문회 운영방식에 있다. 그중에서도 1인당 발언시간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청문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진상규명보다는 TV 중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릇된 관행에서 비롯된다. 88년은 청문회 자체가 언제나 심야까지 이어졌고, 방송사들은 다른 프로그램을 전폐하고 청문회를 생중계했다. 5공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가진 무게와 함께, 노무현을 비롯한 청문회 스타들의 활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제대로된 청문이 어려우므로 필요한 답변을 이끌어내는 것보다는 호통을 치고 망신을 주는 데 더 주력하기도 한다.

여당이 의회의 근원적인 기능을 부정하고 정부와 권력의 방탄 역할을 자처하는 것 또한 청문회를 찌질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원인이다. 사실상 여당 의원들은 국정조사위원이 아니라 국정조사 방해위원으로 참여한다. 그래서 증인 채택의 단계에서부터 방해를 시작하고, 국정조사의 기간도 최대한 짧게 잡아서 내실있는 청문회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TV 중계를 하거나 말거나 여야의 입장을 떠나 충분한 신문이 가능하도록 청문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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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시청률 올림픽 때보다 높아] 동아일보 1988년 11월 8일자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