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항의는 왜 희망일까

어떤 조직이 퇴보의 길을 걸을 때 조직원들은 이탈, 항의, 맹목적 충성의 세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시민들은 탈출자들처럼 보였다. 헬조선을 말하던 이들이 탈조선을 말하기 시작했고, 젊은 이민자들이 늘어난다는 뉴스가 나왔다. 나라의 가장 예민한 고객들이 이탈을 시작하고 있었다. 반면 둔감한 고객들은 그저 눈을 감고 충성을 맹세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성세대는 자신이 먹고사는 일 이외에는 소음처럼 여기는 이들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돌려 보니, 우리는 항의하는 시민들이 가득 찬 사회에 살고 있었다.

2016-11-30     이원재
ⓒ연합뉴스

그런데 거꾸로 독점할 때보다 철도 서비스 품질은 더 나빠졌다. 트럭들은 점점 더 큰 몫을 운송하게 되어갔다. 부피가 커서 전통적으로 철도 운송이 더 유리한 것으로 여겨지던 땅콩 같은 짐도 트럭에 빼앗기고 말았다. 악순환이었다.

이제 고인이 된 허시먼의 저서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에 나오는 유명한 사례다. 어떤 조직이 퇴보의 길을 걸을 때 조직원들은 이탈(exit), 항의(voice), 맹목적 충성(loyalty)의 세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퇴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최소한 가까운 과거 몇 년 동안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랬다. 가까운 미래에 퇴보는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반면 둔감한 고객들은 그저 눈을 감고 충성을 맹세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성세대는 자신이 먹고사는 일 이외에는 소음처럼 여기는 이들 같았다.

시장에서 싸우던 이들은 '냉혈한처럼 이윤 극대화만을 위해 달려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주문에 맞서 항의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회적 기업가들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윤리적 소비자들은 환경과 농민들을 생각하면서 생협과 유기농산물에 지갑을 연다. 사회적 투자자들은 올바른 일의 미래를 믿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는 바로 광장으로 나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오직 이들로부터만 한국 사회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 사회가 퇴보로부터 회복해 일어설 최소한의 희망은 항의하는 이들에게만 남아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