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함성 | 붕괴와 건설의 기로에서

전국을 뒤덮은 사상 최대의 190만 촛불은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세계는 농부, 승려, 대학생, 심지어 청소년들까지 참가한 촛불집회와 평화적인 시민혁명에 놀라움과 찬사를 쏟아냈다. 탄핵이든 하야든, 박근혜 정권의 붕괴는 이미 카운터다운에 들어갔고,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게는 정치적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민주주의의 독특한 표출인 시민혁명은 제도권 정치의 한계와 작동 불능 상태에서 나타난다. 그럼에도 대개의 시민혁명의 경우 안타깝게도 해피엔딩의 사례는 아주 드물다.

2016-11-28     국민의제
ⓒKim Kyung Hoon / Reuters

국민의제 시국특집 14회

글 | 조 민(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

박 대통령의 날개 없는 추락

지난 26일 전국을 뒤덮은 사상 최대의 190만 촛불은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세계는 농부, 승려, 대학생, 심지어 청소년들까지 참가한 촛불집회와 평화적인 시민혁명에 놀라움과 찬사를 쏟아냈다. 탄핵이든 하야든, 박근혜 정권의 붕괴는 이미 카운터다운에 들어갔고,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게는 정치적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시민혁명의 좌절: 색깔혁명

필리핀은 두 번에 걸친 시민혁명을 경험했다. 1986년 2월, '노란 리본'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부각시킨 피플파워로 마르코스의 독재정권은 무너졌고 아키노의 민주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아키노 정권은 민중의 기대를 외면하면서 전통적인 지배 엘리트층의 전면 복귀의 길만 터놓았다. 2001년 1월, 빈민 출신의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면서 정치가문, 재벌, 천주교, 군 고위직 등의 지배집단 연합은 군중을 업고 탄핵으로 몰아붙여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그러나 새로 들어선 아로요 정권 역시 더욱 극심한 부정과 부패로 얼룩졌다. 파워엘리트 내부의 정권교체 수준에 불과했던 필리핀의 시민혁명은 그야말로 '죽 쒀서 개주는 격'이 되고 말았다.

한편 결이 좀 다르지만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발생한 '재스민 혁명'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곳곳에 민주화 시위를 자극시켰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과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킨 '아랍의 봄'은 폭동과 서방의 군사적 개입으로 피로 얼룩졌다. 그럼에도 '아랍의 봄'은 민주주의와 민중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곧 잊혀졌다.

시민혁명의 모델: 벨벳혁명

여기에는 집권 공산당이 정권유지를 포기하고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주도했던 둡체크의 협력 아래 '77헌장'을 이끌었던 하벨의 도덕적 권위와 정치적 비전 등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었기에 순조로운 정권이양이 가능했다. 하벨 정부는 '도덕적․정치적․법적' 정통성을 가졌다. 이에 광범한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체제전환 과정에서 쏟아지는 숱한 개혁 과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촛불혁명: 새로운 국가 건설로!

박근혜 일당의 '막장 드라마'가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언론, 학문․대학사회, 문화예술체육계, 종교계 등 모든 분야를 장악한 주류(主流)계층은 공공성과 공정성의 가치를 철저히 짓밟았다. 대학 입시에서 "돈도 실력"이라고 하여 이 땅의 청소년들을 그야말로 분노와 허탈 상태로 몰아넣었다. '주류 헤게모니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코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붕괴는 국민의 힘, 건설은 정치권의 몫

우리는 정치적 리더십 측면에서도 매우 초라한 모습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 중국의 강력한 '핵심 지도자' 시진핑 국가주석, 러시아의 카리스마적 지도자 푸틴 대통령, 그리고 재무장과 군사대국화로 나아가는 일본의 아베 수상 등 한반도 주변국의 정치적 리더십은 한층 안정적이고 강고한 모습이다. 정치 지도층 모두가 한 몸이 되어 국민의 굳건한 지지와 신뢰를 받아도 대내외적 난관을 헤쳐 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당, 야당 어느 한 정당의 집권으로 엄중한 위기국면을 극복하기가 힘들다.

새누리당이 건전한 보수정치세력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썩은 암 덩어리를 도려내거나 그들과 하루빨리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렴하고 공정한 보수적 가치에 기반을 둔 창당으로 국민 앞에 다시 나서야 한다. 여러 야당과 새로 태어날 보수당과의 협치가 요청된다. 이에 '퇴출 세력'과 문책 범주를 분명히 하고 새로운 정치질서 구축을 위해 큰 팔을 펴야 할 때이다. 여야가 모두 함께 둘러앉는 '대청마루' 포럼이 기대된다.

다른 하나는, 탄핵과 함께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말하자면 탄핵은 탄핵대로, 개헌은 개헌대로 추진되는 투 트랙 접근이 요청된다. 분권형 대통령제 방식을 중심으로 하는 '원 포인터 개헌'은 시간과 소모적 논쟁을 줄일 수 있다. 개헌 논의는 반드시 선거구제 개혁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개헌 없는 대선은 승자독식 구도에서 구조적인 정치 불안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탄핵과 함께 개헌을 통한 정치개혁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글 | 조 민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으며, 선문대학 초빙교수로 대학원 강의를 하고 있다. 통일연구원에서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과 부원장을 역임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해 오래 동안 연구해왔다. 한반도 통일은 우리 사회의 내부 동력이 관건적이라는 인식 아래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와 함께 문명사적 전환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정치의 역할을 탐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