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가 고통받아야 하는가 | 집회 '눈길끌기용' 동물 동원은 이제 그만

소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한 동물이다. 소는 사람보다 청력이 훨씬 민감한데, 특히 고주파에 민감해 사람이 듣지 못하는 간헐적인 소음에도 고통을 받을 수 있다. 또한 300도 이상의 넓은 각도를 볼 수 있는 시력을 갖고 있는 소는 빛의 대조에 민감하고 움직이는 물체가 보이면 쉽게 겁을 먹는다. 어차피 도축될 동물인데, 주인 맘대로 시위에 좀 동원하면 어떠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받는 대우도 이 지경인데 웬 동물 타령이냐"고 한다면, 일단 잘 먹고 살아야 한다며 경제 성장이 먼저, 노동자 인권은 나중이라던 경제성장주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2016-11-29     이형주
ⓒ연합뉴스

이날 오후 5시경 촛불집회 사회자는 "소 두 마리가 광화문 사거리에서 경찰에 막혀있다"며 "소가 무대까지 올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요구했다. 언론에 따르면 소를 탄 농민들과 경찰의 대치 상황이 한 시간 이상 계속됐고, 이 과정에서 시민들과 경찰 간 몸싸움도 일어난 것으로 보도됐다. 오후 6시 30분 경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소를 탄 농민과 경찰 간의 대치 현장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교보문고 앞에서 소를 탄 농민이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소를 탄) 사람은 교체를 하고 있지만 소는 밀착되어 가로막힌 채 한 시간 넘게 서 있으면서 토하고 비틀거리고 있다"며 근처에 있는 수의사를 찾는 내용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에서 한 참가자가 소를 타고 행진을 하고 있다.

소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한 동물이다.

이렇게 외부 자극에 민감한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서도 도축장으로 운송할 때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동물운송세부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의 명보영 수의사는 "소는 예민하기 때문에 좋은 육질의 동물을 생산하기 위해 가둬서 기르지도 않고, 닭이나 돼지 등 다른 축종에 비해 사육공간도 여유 있는 편이다. 그런 소가 낯설고 복잡한 환경과 소음에 노출된 데다, 특별히 훈련되지 않은 동물이 사람을 태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심지어 사람 많은 곳에 적응하도록 사회화가 된 반려동물이라고 하더라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의 큰 집회에 동물을 데리고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시위에 눈길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동물이 동원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에는 반달가슴곰까지 청계광장에 등장했다. 곰 쓸개즙 때문에 곰을 사육해 온 농민들이 곰 사육 금지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에 동원한 것이다. 10년 동안 몸 크기만 한 철창에서 정신병에 시달리며 자기 팔다리를 뜯어먹다 도살되는 운명도 억울한데, 자신의 '몸값'을 요구하는 시위에까지 끌려 나오는 것은 곰의 입장에서는 정말 공평하지 않은 일이다.

2013년 11월 15일 서울 청계광장에 전국사육곰협회 회원들이 데려온 사육곰이 우리 안에 갇혀 있다.

"사람이 받는 대우도 이 지경인데 웬 동물 타령이냐"고 한다면, 인권은 나중이라던 경제성장주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정부 비판 외의 문제를 지적하면 '물타기'라고 하거나,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간절히 원하는 박근혜 퇴진은 사실 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심지어 '소'가 논란의 중심이 된 소값 파동 때도, FTA를 강행하면서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농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정부의 잘못을 탓하기 위해 꼭 소까지 단지 '보여주기 위한' 고통을 당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잘못한 사람이 따로 있는데, 애꿎은 대상에게 벌을 주는 것은 그 대상이 동물이든 사람이든 옳지 않은 일이다.

그날 저녁, 광화문 광장에는 가수 양희은이 노래하는 '행복의 나라로'가 울려 퍼졌다. 내 주위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따라 불렀다. 70,80 년대 거리에서 목이 쉬도록 불렀을 그 노래를 이제 아이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부르는 중년층도 있었다. 어른들과 달리 가사를 알 리 없는 고등학생들도 노래 중간에는 몸을 흔들며 박자를 맞추다가 마지막 후렴구인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는 힘을 주어 함께 불렀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노래하는 '행복의 나라'에 대해 생각했다.

광장에서 단지 눈길을 끌기 위해 고통당하는 동물은 다시 보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나라'가 내 옆에서 노래하던 사람들이 살고 싶은 나라, 그리고 농민들이 얻기 위해 투쟁하는 나라와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번 주도,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 것이다. 그리고 그 광장에서 단지 눈길을 끌기 위해 고통당하는 동물은 다시 보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