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광화문, 분노한 시민들은 희망을 안고 흩어졌다

집회가 끝난 뒤, 그들은 다같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했다. 밤 11시가 되기 전 대부분은 흩어졌다. 각자의 깃발을 들고, 각자의 분노를 여전히 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들은 무엇을 새로 얻게 됐을까? "대통령이 바뀌면 이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믿으세요?" 낮에는 한 기업의 신입사원이고 밤에는 그림작가로 활동하는 정채리(26)씨는 이렇게 답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희망이 생겼어요. 올바르지 않은 일에 대해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이 나라가 꼭 헬조선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사회를 긍정하게 됐다고나 할까요."

2016-11-28     이원재
ⓒ연합뉴스

그날 광화문에는 N개의 깃발이 올려졌다

평소에는 여학생들에게 과학기술을 교육하는 기업 대표이지만 오늘은 다른 사명을 띠고 금요일 밤을 보내야 했다. 사회적기업가, 비영리조직 활동가, 기업 사회공헌활동 담당자 등이 모여 며칠 전부터 준비 중인 '사회혁신가 N명의 시국선언문' 마무리 작업을 맡았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운 채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 단체메시지방을 지켜보다가, 토론이 정리되면 다시 노트북을 열어 글을 수정하는 일을 반복했다.

공동작업자들은 온라인 토론플랫폼 '빠띠'에 공개한 초안에 댓글과 수정제안을 남겼다. 수정은 온라인 문서공동작업 플랫폼인 '구글독스'에서 이뤄졌다. 최종 편집자인 이 대표가 침대에서 작업을 마무리하면, 사회혁신가들로서는 '역사적인' 시국선언문이 완성될 수 있었다.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에 150만명이 모이기 몇 시간 전에 이들의 시국선언문은 완성되어 배포됐다. 시국선언에 서명한 500여명의 사회혁신가들은 광화문으로, 전국 각지로, 자신의 온라인 공간으로 흩어졌다.

누구는 문화예술인을 돕기 위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었다. 누구는 운영하고 있는 족발집을 소외된 이들을 돕는 사회적기업으로 변신시키고 있었다. 누구는 기업 사회공헌활동을 돕는 컨설팅을 하고 있었다.

흩어진 '나'가 모여 '우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26일 오후 2시, 첫눈 내리던 광화문에는 이미 다양한 모임이 수많은 형태로 열리고 있었다.

정치벤처 '와글'은 참석자들에게 빈 피켓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참석자들이 각자 자기만의 손피켓을 만들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도록 돕겠다는 취지였다.

세월호 천막에서는 허무하게 스러져간 목숨을 추모하는 이야기가 펼쳐졌고, 세종대로 사거리 버스정류장 앞에서는 경제전문가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과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경제 현안 이야기를 펼치는 길거리 공개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신홍기(16)씨의 깃발은 트럼펫이었다. 사회적기업 '에듀케스트라'의 수강생 네 명이 팀을 이뤄 연주복을 차려입고, 행진하는 사람들 중간에서 발맞춰 걸으며 트럼펫 연주를 이어갔다.

뮤지컬 배우들의 깃발은 노래였다.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은 세종대왕 동상 바로 뒤에서 청와대 쪽을 향했다.

의 주제가를 불렀다.

© 문과생존원정대 페이스북

문과생존원정대'를 연재하는 이들은 문과생들의 괴로움을 웹툰으로 표현한 스티커를 집회 참석자들에게 배포하고 있었다.

이 수많은 이야기들은 저녁 6시, 본 집회가 시작되자 하나로 모였다. 촛불을 들고 '박근혜는 퇴진하라'등의 구호를 외치던 150만 참석자는, 깜짝 등장한 가수 양희은의 노래를 한 목소리로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 나갈 길/멀고 험해도/깨치고 나아가/끝내 이기리라.'

모두는 공적 의사결정과정을 완전히 깨뜨린 박근혜 대통령에게 분노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분노는 박 대통령을 넘어서서 한국사회 구조에 다다르고 있었다.

취업 못하는 문과 대학 졸업생들은 스스로 잘못된 선택과 부족한 노력을 탓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통령을 부릴 수 있는 부모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인맥과 돈이 모자랐을 뿐이다. 그걸 깨닫고는 한국사회에 대해 화가 났다. 문씨는 그래서 깃발을 들었다.

사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박정희 시대부터 진행된 하나의 발전 사이클을 완성했다. 의도한 대로 하나의 발전모델을 완성한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 구조는 1990년대 이후 한 단계 도약한다. 다음 단계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얻는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는 죄악시되고 국가의 계획과 명령은 사라진다. 대기업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던 재벌로 출발했지만 글로벌기업으로 홀로 서야 하는 시기를 맞는다. '경쟁력'이 시대의 화두가 된다. 정경유착과 명령의 논리는 이윤극대화의 논리에게 자리를 내준다.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과 노동자들의 임금은 희생되어야 했다. 대신 시민들에게 국가는 성공의 규칙을 약속했다. '열심히 공부해라. 그러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취업하면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다. 열심히 일하면 오래 직장생활을 할 수 있고, 낸 빚을 다 갚고 자산 소유자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노후도 안전하다. 내집마련한 직장인, 그게 한국의 중산층이고 시민이다.'

그 구조는 이미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좋은 직장 갈 수 없고, 열심히 일해도 오래 직장생활 할 수 없다.

내집마련은 어느 경우에도 어렵다. 노인자살률은 세계 최고다.

약속은 완전히 깨어졌다. 이번 사태는 그 사실을 최종확인해줬다. 약속을 굳게 믿고 노력하던 청년들이 배신감을 느끼며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씨도 그들 중에 포함됐다.

재벌 대기업은 가장 많이 거론되는 분노의 대상이었다. 어쩌면 대통령은 거대한 부정부패 드라마의 배우일 뿐이고, 재벌 대기업들이 이를 지휘하는 제작진일지도 모른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이런 사태를 미리 견제하지 못한 언론과 지식인 사회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이었다. 조용히 동조한 관료집단도 분노의 표적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복종과 특혜'보다는 '자유와 공정한 성과'를 지향한다. 하나의 깃발이 아니라, 'N개의 깃발'을 포용하는 사회를 원한다.

집회가 끝난 뒤, 그들은 다같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했다. 밤 11시가 되기 전 대부분은 흩어졌다. 각자의 깃발을 들고, 각자의 분노를 여전히 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잔치는 끝났다.

희망이다.

낮에는 한 기업의 신입사원이고 밤에는 그림작가로 활동하는 정채리(26)씨는 이렇게 답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희망이 생겼어요. 올바르지 않은 일에 대해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이 나라가 꼭 헬조선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사회를 긍정하게 됐다고나 할까요."

어쩌면 이들은 26일 광화문을 계기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새롭게 시작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여행들이 모여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혁신'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흩어졌지만 흩어진 게 아니다.

이날 서울광장 정면의 서울도서관 대형현수막에는 가수 전인권의 노래 '걱정말아요 그대'의 마지막 구절이 쓰여 있었다.

서울꿈새김판 시안. © 서울시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