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장남으로 살아왔나

나는 소통을 제대로 할 줄 몰랐음에도 가족 안에서 별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꽤 편안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내가 소통을 하지 않고 내 뜻대로 일을 밀어붙일 때, 부모님, 특히 엄마, 그리고 동생들이 내 기분을 살피고 알아서 나한테 맞춰줬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내가 누렸던 장남이자 큰형으로서의 특권이다. 나는 소통이 부족했음에도 그로 인한 불이익을 보지 않았고, 가족 안에서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노동으로부터 면제되어 있었다.

2016-11-24     페미디아

몇 주 전 '남성성'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남성들의 세계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글을 써달라는 메일이었다. 메일을 읽고 여러가지로 고민이 됐다. 나는 남성들만의 세계, 아니면 남성들이 주축이 되는 세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모임이나 공간을 회피해왔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남성들만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물론 그런 세계를 접할 일이 거의 없는 여성들보다는 조금 더 아는 게 많겠지만, 그렇다고 남들 앞에서 남성들의 세계란 이런 것이라고 자신 있게 글을 쓸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고민 끝에 다른 남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말고, 내가 남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내가 남성으로서 존재하고 행동하는 공간을 하나만 꼽자면 다름 아닌 가정이기에, 내가 어떻게 가족 안에서 생활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남성으로서의 삶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차별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나는 언제나 망설임 없이 입장을 정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차별적인 언행을 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이 '가정'의 의미가 조금 애매할 수 있어서 자세히 쓰자면, 나는 올해 봄에 결혼을 했다. 지금 내게 가정은 와이프와 나 둘로 이루어진 공간이자 관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내게 가정은 이른바 '본가'를 의미했다. 본가는 엄마, 아빠, 나, 그리고 남동생 둘로 이루어져 있다. 엄마 빼고는 다 남성인 셈이다. 그렇다면 가정 내에서의 남성의 세계, 내가 참여하며 관찰하고 살펴본 우리 형제들의 이야기를 써 볼 수도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조차 쓰기 힘들 것 같다. 동생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도, 아빠하고 깊은 유대를 나누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본가 가족구성원들과 나의 관계

동생들하고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생들이 마초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다소 부적절한 말을 하려고 하면 나는 일단 대화를 피하고 봤다. 사실 동생들이 점차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 적잖게 당황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개입을 할 정도의 의욕이 생기진 않았다. 적당히 선을 그으며 살아왔다. 그나마 엄마하고 이야기하는 건 즐거웠는데,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인가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엄마한테 말하지 않게 됐다. 내가 무슨 수업을 듣는지, 일주일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요즘 누구랑 가깝게 지내는지 등, 어떤 이야기도 안 하게 됐고, 주로 내가 엄마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었다.

가부장제 속 남성권력의 계승 의식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와 막내동생을 소외시키며 이래저래 부적절한 이야기를 한 아빠나 동생이나 잘 한 건 없겠지만, 계속해서 대화를 피해온 내 자신은 과연 잘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지, 과연 가부장과는 전혀 다른 태도와 행동을 보여왔는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드디어 글의 서론을 마치고 내 이야기, 가족 안에서 내 남성으로서의 모습, 내 소통 부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관계맺음과 소통을 위한 감정노동

정확히 말하자면 내 소통 부족 그 자체가 내 남성으로서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사실 소통 부족은 성별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단점이다. 다만 나는 소통을 제대로 할 줄 몰랐음에도 가족 안에서 별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꽤 편안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내가 소통을 하지 않고 내 뜻대로 일을 밀어붙일 때, 부모님, 특히 엄마, 그리고 동생들이 내 기분을 살피고 알아서 나한테 맞춰줬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내가 누렸던 장남이자 큰형으로서의 특권이다. 나는 소통이 부족했음에도 그로 인한 불이익을 보지 않았고, 가족 안에서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노동으로부터 면제되어 있었다.

장남이라는 특권에 대한 성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남성성'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남성성에 한 가지 모습만 있진 않을 것이고, 특히 문제가 되는 가부장도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내가 가정 내의 남성성에 대한 글을 쓴다고는 했지만, "가정 내의 남성성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나는 남성으로서, 남성이기에 소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도 문제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아빠가 내게 막걸리를 권할 때 어떻게 행동했어야 할까? 동생 따라 같이 식탁에 앉아 막걸리를 따라야 했을까?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아빠한테 내가 토요일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싶진 않으니 엄마를 포함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다른 활동을 하자고 하거나, 술은 저녁에 온 가족이 같이 식사하며 마시자고 제안이라도 해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빠가 비록 전형적인 마초이자 가부장이지만, 그렇다고 매번 나 때문에 무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야, 아빠가 바로 밑 동생과 나만 불러내는 상황에서 엄마하고 막내동생도 소외시키지 않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다음 번엔, 스스로 조금 어색하더라도 그렇게 해봐야겠다.

기획: 윤영 (노동당 여성위원회 조직국장)

* 이 글은 <페미디아>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