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4년차, 나는 병역을 거부합니다

눈, 추위, 반말, 고성, 얼차려, 구타, 부족했던 밥과 찬 밥, 부족한 물로 인해 씻지 못한 날, 6·25때 사용하던 수통, 명령, 복종, 계급, 간부 회식이 끝나고 자고 있던 병사들을 깨워 뒤처리 시켜서 그들이 먹은 것들 정리하다가 느낀 분노, 일상의 대화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는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 누군가의 자살과 '그 사람 어쩌다 알게 됐어? 피곤하게 엮이지 마.'라는 이야기, 군인답게 행동하라는 말, 총소리, 남자다워야지라는 말, 맞아야 정신 차린다는 이야기들 등. 그리고 그런 군이라는 조직 안에서 철저하게 조직에 순응하고, 맞추고, 닮아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살았던 나. 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2016-11-24     전쟁없는세상

글 | 이상

폭력. 폭력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국어사전)] 수단이나 힘에는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힘까지도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청소년기는 폭력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공부를 잘 하지 않았고, 그래서 잘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보통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길 원했고, 튀길 원했지요. 학교는 사회의 다른 조직이 그렇듯 철저한 경쟁 시스템으로 돌아갔고, 그 안에서 개인이 지닌 다양한 개성은 위험하거나 반항하는 것으로 치부되어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쓸모없고 귀찮은 존재였고, 변화하거나 고쳐져야 하거나 도태되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내게 전해진 그 폭력은, 나로부터의 폭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약한 나 자신에게 행하는 폭력, 내가 친구에게 행하는 폭력, 내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행하는 폭력으로.

시간이 흘러 2010년 8월 31일, 102보충대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처럼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저에게 '군대'는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성' 이라면 '당연히' '가야 하는' '삶의 코스' 같은 것이었습니다. 고민을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청소년기의 나에게 '사회가 정해놓은 삶의 모습'을 강요하던 그들의 세뇌는 성공했습니다.

지난했던 군복무를 마치고 2012년 6월 9일, 전역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전역 후에, 저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계기는 여행이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고, 그곳에서 저는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하루하루는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위로와 안도,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질문할 줄 알고, 거부할 줄 아는 사람들을요. 강정마을에서 군사기지를 반대하며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활동가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것을 연극으로 만든 예술인,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평화와 평등을 실현시키려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

작년까지 3번의 동원훈련을 마쳤습니다. 훈련 기간과 훈련을 받지 않는 일상, 그 간극에서 생겨난 고민은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경험한 군대라는 조직, 내가 생각하는 군대라는 조직은 한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추구할 수조차 없게 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불평등의 구조와 문화를 지니고 있는 조직이자, 군대 밖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구조와 문화를 유지하고, 강화하고, 재생산해내는 데에 있어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조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3번의 동원 훈련이 지나고, 자괴감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나의 지향과 가치를 스스로 포기한 것 같은 마음에, 일상에서의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불평등의 구조와 문화를 유지하고 강화하고 재생산 하는 조직의 행위에 가담하는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