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을 당하고도 국민은 담대하고 슬기로운데

처음 두번은 시위에 놀란 박근혜씨가 진정성이 결여된 사과나마 연거푸 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전혀 넘어가지 않고 11월 12일의 3차 촛불대행진을 통해 퇴진판결을 (말하자면 3심에서) 확정하자, 도리어 정면 불복의 길을 택했다. 주권자에 맞선 '내란' 수준의 저항으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19일의 4차 집회는 따라서 종전의 국정농단·부정비리에 대한 단죄에서 '내란진압' 작업으로 옮겨갔다고 말할 수 있다. 26일의 집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건 간에 실질적 '내란죄'에 대한 국민적 소추(訴追)를 확인할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후의 응징작업은 집회인원이 불고 줄고를 떠나 더욱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즐겁고 질기게 진행될 것이다.

2016-11-24     백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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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서는 전황을 점검해가며 싸우는 일도 필요하다. 전체 상황을 어느 개인이 속속들이 알기는 어차피 힘든 만큼 나는 지난주(11월 16일) 페이스북 발언(「담대하고 슬기롭게 새시대를 열어갑시다」, 참조: 한겨레 2016.11.16)을 잇는 후속논의를 통해 시국이 요구하는 '집단지성'의 작업에 일조할까 한다.

대통령 퇴진운동에서 '내란진압' 촛불로

촛불민심의 위력은 20일의 검찰발표에서도 드러났다. 최순실·안종범·정호성 씨들의 공소장에 대통령이 피의자로 적시됨으로써 박근혜씨는 예의 '배신의 정치'와 '하극상'을 겪어야 했고 그동안 야당들이 머뭇거리던 탄핵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그렇다고 '탄핵정국'이 시작되면서 국민적 퇴진운동이 사그라지는 '국면전환'이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 '탄핵하려면 해보라'는 협박은 일부 야당인사들에게 먹힐지언정 국민들에게는 허장성세 아니면 이성을 잃은 마지막 몸부림으로 다가올 뿐이다. 현명한 정치인이라면 자기중심적인 계산으로 이 사태를 '수습'하려 들지 말고, 국민의 지상명령을 받드는 일을 최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때다.

총리 문제를 대하는 야권의 태도

퇴진운동은 운동대로 하면서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국회의장에게 요청한 대로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서 들이밀면 그만이다. 박근혜씨가 안 받겠다고 하면―이제는 그 약속마저 뒤집을 속셈을 내비치고 있지만―안 받는다는 사실이라도 빨리 확인하고 그걸 전제로 싸우면 된다. 후보를 합의하는 문제도 국민의 지상명령을 우선시하고 '퇴진 이후'의 이해득실을 일단 접어두기로 하면 너무 걱정할 게 없다. 어차피 국민의 명령은 '퇴진에 따른 과도내각'이지 '실질적인 권한을 이양받은 거국내각'이 아니다. '최악'보다 나은 인물이면 된다. 야3당뿐 아니라 새누리당 비박계의 추천인사도 포함해서 논의하다가 합의가 안 되면 의원들의 투표로 정하는 방법도 있다. 요컨대 대통령을 그 자리에 둔 채로 권력을 누려보자는 미련이나 특정인의 대선가도에 유리한 권한대행을 고르겠다는 집착을 버리고 최대한 신속 간명하게 처리할 일인 것이다.

정치인도 국민처럼 담대하고 슬기롭기를

이렇게 합의했다고 해서 여덟 사람이 내내 똑같은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다. 국민명령의 구체적 이행방안에 대해서는 각자 앞다투어 최선의 지혜를 발표하는 게 오히려 바람직하며, 합의정신에 어긋나는 언행이 나올 때는 기탄없는 상호비판이 가해져야 옳다. 대선 경쟁은 그런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당과 당 사이의 경쟁도 마찬가지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