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스토리] 3. 공짜로 얻은 내 큰아들에게

5년 전 우리 아들은 사랑하는 반쪽을 만났다. 아들이 외출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 내가 만나는 형 집에 와도 돼요?" 해서 그러라고 하니 문밖에 있던 아들의 애인이 곧바로 들어왔다. "실제로 보니 내가 생각했던 모습보다 더 마음에 드는구나!"라고 반겨주었다. 첫인상도 역시 좋았다. 나의 첫인사에 고마워하고 좋아하던 아들과 애인의 표정은 나를 흐뭇하게 했다. 시아버님과 같이 살고 있어서 아들 선배라고하면서 곧바로 인사시켰다. 할아버지도 아들의 애인을 아주 좋아 하셨다.

2016-11-22     성소수자 부모모임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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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늘(성소수자 부모모임)

학교 근처에 자취를 하는 아들이 졸업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집으로 왔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스쳤다. 아들이 대학시절을 즐겁게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한 탓일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아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유를 알려고 다그쳐 물었다. 그 친구가 어렵게 꺼낸 말은,

듣는 순간은 그냥 멍하였다.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시간이 정지됐다.

생각도 멈추고 심장도 멈추는 느낌이었다.

"한쪽에 많은 수의 이성애자가 있고 다른 한쪽에 적은 수의 동성애자가 있어. 그리고 그 사이에 또 다양한, 적은 수의 사람들이 존재해. 아들은 적은 수의 동성애자일 뿐인 거야. 아무 문제 없어."

"너 고민 있지? 난 들을 준비 되어있어. 얘기해줘. 기다릴게."

"사랑하는 내 아들.

편지의 중간에 동생이 해준 말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인 것처럼 썼다.

이 문장에는 엄마의 마음을 알리려고 밑줄까지 그었다.

머리맡에 놓인 짧은 편지를 한동안 하염없이 들여다보던 아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참 후, "엄마 밥 주세요"라는 너무도 반가운 소리에 얼른 밥을 차렸다. 아들은 한 그릇을 다 비우고 곧바로 학교로 갔다. 아들은 무사히 졸업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렇게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긴 고독의 시간은 철저히 나의 몫이었다. 그 기간 나는 마음 깊숙이 숨겨놓은 욕심을 내려놓고 나를 다시 되돌아보는 단련의 시간으로 삼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생애 가장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음 깊숙이 고독이 자리 잡았던 많은 성소수자들을 만나며 조금씩 치유됨을 느낀다. 여기가 난 참 편하고 좋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가 했던 "성소수자는 모여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성소수자도 모여야 하지만 부모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반쪽 만난 아들, 우린 가족이 되었다

지금은 부모와 당사자의 만남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부모모임'으로 이어져 매월 정기모임을 진행하고 있고, 요즘은 여러 가지 행사로 바빠졌다. 3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모임에 찾아오시는 부모님들은 점차 안정을 찾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편견이 가득한 사회에서 우리 자녀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걱정하신다.

아들이 외출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 내가 만나는 형 집에 와도 돼요?" 해서 그러라고 하니 문밖에 있던 아들의 애인이 곧바로 들어왔다. "실제로 보니 내가 생각했던 모습보다 더 마음에 드는구나!"라고 반겨주었다.

아들 애인이 돌아간 뒤 한동안, 아들과 나는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이상하게 서로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나는 안심의 눈물이었고 아들은 감사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아들과 헤어질 때는 꼭 안아주는 습관이 생겼다. 간지럽지만 귀에다 대고 "사랑해"라는 말도 아낌없이 자주한다.

공짜로 얻은 내 큰아들에게

많이 우울하던 아들이 너를 만나 밝아진 것이 참 다행이다.

네가 '저희는 행복해요'라고 하고 둘째도 '행복해요'라고 하니 뭘 더 바라겠니!

너희는 어렵게 만났기에 사랑의 깊이가 더없이 깊은가 보다.

너를 좋아하시던 할아버지 장례식 때도 함께 빈소를 지켜주어서 든든했다.

무엇보다 서로 재미있게 살고 있어서 난 기쁘다. 아낌없이 사랑해.

하느님께서는 제 편이심을 저는 압니다.

(시편 56,10)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