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대통령은 공인이다

국민은 자녀로 은유될 수 없다. 대통령이 아버지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니며, 공화정이 어머니인 것도 아니다. 국가는 가정의 확장판이 아니다. 언론과 지식인들이 시국을 개탄하는 목소리를 내준 용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존중하자는 변호사를 포함하여 모든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여자 대통령을 공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2016-11-17     한채윤
ⓒ연합뉴스

분명 현직 대통령은 남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네 번째 하야가 될지, 최초의 탄핵이 될지 혹은 퇴진 선언 후 과도 내각으로 조기 대선 실시가 될지 정도의 선택만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도 계속 받는다. 이 엄중한 상황에서 왜 대통령의 '성별'이 도드라져 문제로 거론될까. 그 전의 대통령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성별'로 문제를 삼은 기억은 없다. 대통령의 비리를 캐기 위해 목숨을 건 탐사 보도도 마다하지 않던 언론들은 여성 혐오 앞에서는 쉽게 경솔해진다. 미국 대선 전에 트럼프가 "여성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을 보라"는 연설을 했다는 내용이 SNS에 돌았고 몇몇 대형 언론사들은 이를 인용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마저 이를 언급했다가 사실이 아니라고 정정하는 공지를 기자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이 해프닝의 시작은 어느 블로거가 재미삼아 만들어서 올린 한 장의 '짤방'이었으나, 모두가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실어 나른 것이다. 경솔함은 언론만이 아니다. 학자들은 여성 혐오 앞에서 지성을 내려놓는다. 몇 해 전 모 철학자가 설악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면서 설악산을 돈 몇 푼에 쉽게 사는 매춘부로 만들 것이냐, 쉽게 오르지 못하는 도도한 여신으로 만들 것이냐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등산을 장엄한 자연 속에서 인간이 수행을 닦는 과정이라고 점잖게 설명하더니 결국 창녀와 성녀로 여성을 나누는 해묵은 여성 혐오에 기댄 은유로 끝낸 것이다. 며칠 전에 한겨레에 실린 어느 교수의 기고문도 이와 비슷했다. 민주공화국을 지키자는 글을 쓰면서 '청결한 음부'라는 개념을 꺼냈다. 권력을 가진 국가 기관은 여성의 음부처럼 건강하고 깨끗해야 하는데 지금은 썩었으니 도려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어 프랑스혁명 때 애국 시민들이 '공화정은 어머니'라고 외쳤다며 어머니와 자녀들을 위해 민주공화국을 똑바로 세우자고 역설하고 있으니, 대통령의 성별을 의식한 은유가 아닐 수 없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