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행동으로 마무리된다

내년 초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 두 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는 것만큼 블랙코미디는 없다. 지금 시급한 일은 2선 후퇴든, 퇴진이든 박 대통령이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제 발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현실화한다면 탄핵 외길밖에 없다. 여기엔 세 가지 전제가 붙는다. ①수사 기록에 '대통령의 범죄'임이 명시돼야 한다. ②국회에서 부결됐을 때 그 후폭풍을 제도권이 감당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③여야 합의가 가능한 헌재 소장 후보가 제시돼야 한다.

2016-11-16     권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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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바뀌고 있는 건 계절만이 아니다. 검찰 수사는 정확히 201년 전 프랑스 신문의 역순이다. 최순실씨 고발 사건 형사부 배당→박근혜 대통령 "재단 자금 유용 엄벌"→검사 두 명 추가 투입→문건 유출 대국민사과→특별수사본부 구성→광화문 집회→박 대통령 조사.

이제 자연인 박근혜씨가 대통령 자격을 상실했음은 분명해졌다. 그 이유는 헌법과 법률을 어겨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했다는 데 있다. 서초동 법조타운에선 "박 대통령과 최씨 일당은 사실상의 범단(범죄단체)"이란 지적까지 나온다. 검찰이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 것은 여야의 특검 합의 때문이 아니다. 그간 방조범 노릇을 해 온 조직의 존립 근거를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 상태에서 "대통령은 내치에서 손을 떼고 외치만 맡아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국군 통수는 내치인가, 외치인가. 내치와 외치가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 당장 내년 초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 두 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는 것만큼 블랙코미디는 없다.

국정 공백은 국회에서 선출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한 권한대행 총리로 메워야 한다. 헌법상 '총리는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도록' 돼 있다고? 대통령에 의해 헌정 질서가 심각하게 손상된 상황이다. 손상된 헌정 질서를 복구할 방법을 어떻게 헌법 자구에서만 찾을 수 있는가. 새로운 상황에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날 광장의 목소리들은 진지하고 절박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은 "세월호를 기억해 주세요"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 "성과연봉제 폐지"를 외치고 있었다. "박근혜 하야" 촛불 밑에는 엄청난 변화의 에너지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 에너지들이 허탈감으로 바뀐다면 그 다음에 등장하는 건 '엘바섬의 나폴레옹' '한국의 트럼프'일 것이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