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눈높이를 낮추라고요?

어느 취업준비생은 "대기업만 고집하지 말고 눈높이를 낮추라는 어른들의 얘기는 '폭력'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폭력'에 대한 저항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용이 되려고만 할 뿐 개천의 미꾸라지들은 죽든 살든 내팽개쳐 두는 집단적 습속을 갖고 있다. 사실상 전국민적 합의하에 '미꾸라지 죽이기'가 일어나는 현실에서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이 폭력으로 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2015-05-04     강준만
ⓒ연합뉴스

김태형이 2010년에 출간한 <불안증폭사회>에서 "우리는 사람에 대한 놀라운 무지를 드러내는 이런 발언들을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다"며 소개한 말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눈높이를 낮추라는 주문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 정부 취업 대책의 골간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 취업률로 서열을 결정당하는 전국의 대학에서 줄기차게 외쳐지고 있는 구호다.

그런 눈 걱정을 많이 해주는 신문 중의 하나인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대졸자들이 취업 눈높이를 더 낮추고 스스로 다양한 취업 루트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대학 졸업장이 취업에 아무 쓸모 없는 휴지 조각이 되는 시대를 맞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게 말하는 선의는 이해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사회 전체를 생각하면서 진단과 처방을 내놓아야 할 언론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정상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청춘이다>(2011)라는 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세간의 상식'에 답을 하는 자세를 가져보는 게 어떨까?

이 상식의 핵심은 '임금 격차'와 더불어 '발전 가능성' 또는 '희망'에 있다. 어느 취업준비생은 "대기업만 고집하지 말고 눈높이를 낮추라는 어른들의 얘기는 '폭력'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폭력'에 대한 저항은 아닐까?

도 잘 지적했듯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삼성전자 경쟁력의 핵심 요소 중 하나도 협력업체를 치밀하게 쥐어짜는 갑질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삼성전자는 '개천에서 난 용'인데, 그 용 하나 키우자고 개천의 수많은 미꾸라지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도 정부의 그런 직무유기와 무능에 무관심하다. 그저 대기업을 밥벌이의 터전으로 삼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용이 되려고만 할 뿐 개천의 미꾸라지들은 죽든 살든 내팽개쳐 두는 집단적 습속을 갖고 있다. 사실상 전국민적 합의하에 '미꾸라지 죽이기'가 일어나는 현실에서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이 폭력으로 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