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의 '에일리언'이 돼버린 흑염소

2015-05-02     곽상아 기자
ⓒ한겨레

[토요판] 매물도 염소 소탕 현장

하루 두 배의 속도로 연못을 덮고 있는 수련이 있다고 하자. 30일째 연못이 수련에 완전히 뒤덮인다고 가정할 때, 연못의 절반이 덮일 때는 언제일까. 29일째다. 민간 환경 싱크탱크인 지구정책연구소의 레스터 브라운 소장은 이 비유를 들며 최후의 순간까지 지구환경의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경고한다.

“흑염소입니다. 그러니까 매물도에 들어온 게 1970년대 중반쯤이에요. 우리가 조사를 해봤더니 흑산도 옆 장도 주민이 풀어놓고 갔더라고요.”

국립공원의 ‘에일리언’

미국 알래스카의 디날리국립공원에서였다. 칼처럼 이어진 능선, 흘러내린 낭떠러지 앞에서 관광객들은 게임 ‘월리를 찾아라’에 빠진 것처럼 ‘산양을 찾아라’를 하고 있었다. 산양 한두 마리가 관찰되면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국립공원 302호의 승객들도 월리를, 아니 흑염소를 찾고 있었다. 배가 엔진을 죽이고 매물도를 천천히 한바퀴 돌았다. 사람들은 성곽처럼 우뚝 솟은 섬 구석구석을 훑었다. 매우 유사한 광경이었다. 다른 것은 알래스카의 산양이 야생의 ‘귀하신 몸’ 멸종위기종이라면, 매물도의 흑염소는 영양탕집에서 파는 흔한 ‘가축’이라는 사실뿐.

21일 오전 매물도 절벽에서 도망친 염소(위 사진에서 아래 염소)는 결국 이날 오후 사람들에게 쫓겨 섬 정상부 등대로 뛰쳐나왔다가 총탄을 맞고 숨졌다. 염소를 소유주에게 인계하려고 대나무에 묶었다.

“너무 멀어요. 염소가 (총알을) 훌훌 털고 가버린당께요.”

환경부는 2011년 연구를 통해 염소가 수용한계 이상으로 증식하면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을 내리고 염소를 ‘생태계 위해성 2급 종’으로 분류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00년 외래종 전문가 그룹(ISSG)에 연구 용역을 줬고, 연구 결과 ‘100대 악성 외래종’에 염소가 포함됐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2612마리의 염소를 포획했다. 염소 포획은 ‘생포’가 원칙이다. 섬 여기저기 그물을 친 뒤 몰아서 잡은 산 염소를 소유주에게 전달한다. 매물도에서 포수를 동원한 건 인간과 염소의 싸움이 호각지세가 되면서 끝이 날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도진 과장이 말했다.

인간을 본 염소는 절벽으로 몸을 숨긴다. 염소의 목숨도 경각에 달렸지만(생포되더라도 흑염소집에 갈 게 확실하므로), 사람의 목숨도 경각에 달렸다. 2009년에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염소몰이를 하던 공단 직원이 숨졌다. 매물도에서는 지난 3월부터 세 번의 그물몰이 작업을 통해 염소 18마리를 ‘생포’했고, 이제 섬에는 5~7마리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다. 송도진 과장 등은 더이상 그물몰이 방식의 생포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푸석해진 땅, 과자로 지은 집

“이것 보세요. 염소가 수피를 다 갉아먹었습니다.”

“수피가 없으니, 영양분이 나무 위로 공급이 되지 않죠. 아래부터 천천히 썩다가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이렇게 넘어지는 거예요.”

쑥 한 포기 보이지 않았다. 갯방풍, 우실, 전호 등 과거에 살던 초본류 식물도 사라졌다. 땅에 난 풀을 결딴낸 염소는 나무를 공격했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까마귀쪽나무 가운데 군락을 이루던 후박나무가 절멸했다. 송도진 과장은 “지리산 반달곰이 차나무를 안 먹는 것처럼, 염소도 이상하게 동백나무는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섬의 상당 지역이 고사목 지대로 변했다. 나무와 풀이 사라지자 푸석해진 땅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산사태가 났다.

염소가 나무를 갉아먹어 만든 무늬.

현장수색조에 합류했는데 공포가 닥쳤다. 섬은 정상부를 제외하면 사면으로 천길 낭떠러지였다. 위태위태하게 걷다 중심을 잃고 나뭇가지를 움켜잡으면, 썩은 나뭇가지가 푸석 부러졌다.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도 산사태 난 땅은 신경질적으로 돌을 낙하시켰다. 탕. 염소의 마법에 홀린 것처럼 포수의 총탄은 빗나가기 일쑤였다. 염소는 수시로 나타났지만, 인간을 비웃으며 절벽으로 뛰어갔다. 섬은 ‘과자로 지은 집’ 같았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떨어지기 일쑤였다. 염소는 섬의 식생을 변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권투선수의 주먹처럼 큰 불알을 가진 수놈이었다. 몰려든 이들이 다들 한마디 했다.

미리 쳐놓은 올무나 그물에 걸려 죽은 염소를 포함해 이날 포획, 수거한 염소는 11마리였다. 애초 5~7마리가 남은 것으로 여겼으니, 그보다 훨씬 많았던 셈이다. 다도해국립공원 서부사무소는 올해부터는 최후의 한 마리까지 포획해 공원 내 무인도를 ‘무염소 지대’로 만들기로 했다. 번식력이 워낙 좋아 한두 마리라도 남으면 그간의 수고가 물거품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종관 다도해공원 서부사무소장은 “완전 제거를 하지 못해 절벽 뒤에 숨은 염소들이 다시 번식하곤 했다”고 말했다. 오후 4시께 포획 작업을 마쳤다. 이제 매물도에 남은 염소는 많아야 한두 마리 정도로 보였다.

이제 누구의 섬이 됐나

매물도는 동시에 ‘야생보전’과 ‘동물복지’가 충돌하는 공간이다. 파괴자 염소를 제거함으로써 섬 생태계를 보호하는 게 윤리적인가, 아니면 인간의 부주의로 번성한 염소를 살생하지 않는 게 윤리적인가. 비슷한 사례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북한산국립공원에 퍼진 유기견 들개를 포획하면서 동물보호단체와 갈등을 겪고 있다. 재개발이 추진된 지역에는 유기견이 많아진다. 개들은 산속으로 들어가 살길을 찾았지만, 그곳은 ‘야생동물’이 아니면 들어가서는 안 될 국립공원이었다. 생포된 들개들은 동물보호소로 옮겨졌고, 그곳 개, 고양이의 운명이 그러하듯 안락사됐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들개는 북한산 생태계를 교란시킬지 모른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윤리적인가. 자연을 다루는 인간의 믿음과 윤리는 이렇듯 모순적이고 허약하다.

이튿날 송도진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염소도 마저 잡혔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그가 말했다.

비자 없이 국립공원의 땅에 거주한 매물도 염소의 40년 역사도 이로써 끝이 났다. 또다시 누군가 생명의 씨앗을 이 망망대해의 섬에 부주의하게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매물도는 붕괴 위기에서 벗어나 서서히 복원될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내년부터 매물도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자생식물을 심어 섬 생태계를 복원한다고 밝혔다. 매물도는 무염소 지대가 되었다. 염소의 섬은 자연으로 돌아간 걸까. 아니면 염소의 섬을 인간이 빼앗은 걸까. 곤혹스러운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