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법'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연구되어온 지식이었다

2016-10-31     PyungSeok 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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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영국 데일리 메일에 콘돔을 낄 필요 없이 성관계 몇 분 전에만 먹으면 임신을 예방할 수 있는 남성용 피임약이 개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동물 실험을 거쳐 임상 결과 별 이상이 없으면 2021년께 상품으로 출시가 될 것이라 하니, 제품 개발이 성공하면 거의 300년 만에 콘돔이 필요 없는 피임의 시대가 도래하는 셈이다. 18세기초 콘돔이 발명되기까지 숱한 난관을 뚫고 온 우리 인류다. 사실 피임의 역사는 문자가 발명되기도 전부터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다. 피임법은 인류의 시작부터 후대에 전승해오던 기초적인 지식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다. 그 중 몇 가지 사례를 책에서 추려 모아보았다. 누가 뭐라 하건, 우리는 언제나 답을 찾아왔다. 즐거움과 안전을 함께 취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1. 부족사회: 해초는 여러모로 유용하다.

"비록 문자가 없는 미개사회에서도 임신·출산의 생리학적인 메커니즘은 숙지하고 있다. 따라서 피임기술도, 원시적이긴 하나 다방면에서 시도되고 있었다. 이스타 섬 원주민 사이에서는 질에 해초를 삽입하여 임신을 방지했으며, 아프리카 부족들 사이에서는 질외 사정도 행해지고 있었다. 또 폴리네시아 피지 섬 원주민은 내복용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로가수(樹), 사마로수(樹)의 잎이나 껍질을 벗긴 뿌리로 즙을 만들어 그것을 복용하였다. 대개 이 내복약은 주로 경험이 없는 임산부가 복용했는데, 경험이 있는 산부도 임신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 사용했다."(책 '섹슈얼리티 성 문화사', 후쿠다 카즈히코 저)

2.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악어 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지’에서 이 같은 임상학적 의견을 말하고 있다. 이 실증학적 견해는 분명히 효력이 있었다. 제정 로마시대의 여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역시 이러한 피임법을 숙지하고 있었다...고대 이집트에서는 임신을 막기 위해 삽입 좌약의 처방이 개발되어 있었다. 그린(Green, 1847-1929년)의 ‘피임의 세계사’에 의하면, 파피루스 문헌에는 “악어의 변과 꿀을 혼합하여 천연 탄산소다와 함께 질 내에 삽입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처방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피임법은 근대 의학에 비춰보아도 피임의 역할을 썩 그럴듯하게 해내는 과학적인 처방전이었다."(책 '섹슈얼리티 성 문화사', 후쿠다 카즈히코 저)

3. 16세기 유럽: 공작부인은 스펀지를 잊지 않았다.

"더치페서리(DutchPessary)나 콘돔이 발명되기까지는 유럽, 특히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스펀지 탐폰(tampon, 면봉, 거즈봉)이 16세기경부터 널리 사용되었다...탐폰의 안내서에는 “스펀지에 브랜디 몇 방울을 적셔 자궁 입구를 막으면 된다”고 쓰여 있어 피임효과를 과대선전하고 있다..스펀지는 2.5cm부터 레몬 크기만한 것까지 여러 크기의 종류가 갖추어져 있었다. 모두 둥글고 가는 명주 끈이 붙어 있었다."(책 '섹슈얼리티 성 문화사', 후쿠다 카즈히코 저)

4. 18세기 영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양 창자를 버리지 않는다.

"...18세기 초 정확하게는 1706년, 위의 광고가 영국에 출현했다. ‘비교할 데 없는 콘돔 씨(氏)’, ‘반가운 발명’, ‘대영제국의 우수한 국민’으로서, 콘돔의 출현은, 남성은 물론 여성한테도 대단한 절찬을 받았다. ‘배불뚝이와 울며 보채는 아이’로부터 아내들은 해방되었고, 아가씨들은 미혼모 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남자는 창부들로부터 성병을 선물 받을 염려도 없어졌다. 일석이조뿐인가, 일석삼조, 일석사조의 축하할만한 ‘반가운 발명’이었다."(책 '섹슈얼리티 성 문화사', 후쿠다 카즈히코 저)

그렇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을 거치며 근대의학은 피임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고, 1860년대 미국에서 출간된 ‘자연의 서’ 같은 책들은 피임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대중들에게 널리 배포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선 이른바 '순결 운동가'들이 '임신의 예방 혹은 낙태를 목적으로 고안된 물건'을 우편으로 배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1873년 통과시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책 '아내의 역사', 매릴린 옐롬 저). 그러거나 말거나 피임법은 언제나 있어왔고, 날로 발전해 왔다.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피임법에 관한 앞으로의 전망이 밝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