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바타가 댓글 달고 모바일쇼핑하는 날

대중적 욕망을 정확히 포착한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인데도 사람들이 세컨드 라이프에 아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사람들은 수많은 게시판과 채팅방을 통해 이미 '세컨드 라이프적인' 삶을 살고 있다. 3차원 사이버 공간과 아바타만 없을 뿐, 세컨드 라이프가 채워줄 욕망을 이미 수많은 게시판 사이에서 해소하고 있다. 익명의 아이디로 악플을 달며 평소 나와는 다른 캐릭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일 게다. 세컨드 라이프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게시판과 채팅방, 블로그 등이 채워줄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제시해야만 한다.

2016-11-01     정재승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확장된 자아 '아바타'

2003년 린든랩이 처음 선보인 '세컨드 라이프'는 수많은 아바타들이 모여 사는 온라인 3차원 가상세계다. 과학자 필립 로즈데일은 머지않아 평소 나의 페이스북, 카카오톡 대화 등을 통해 파악한 내 캐릭터가 담긴 '가상의 나'가 나를 대신해 소셜미디어에서 돌아다니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미국의 과학소설가 닐 스티븐슨은 자신의 공상과학소설 <스노 크래시>(1992)에서 가상의 나라 '메타버스'(Metaverse)를 창조하고 그리로 들어가려면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려야만 하는 세상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바 있다. 평소 피자 배달부로 살고 있는 주인공 히로는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서 뛰어난 검객이자 해커다. 히로는 메타버스 안에서 퍼지고 있는 신종 마약 '스노 크래시'가 가상공간 속 아바타의 주인, 즉 현실세계 사용자의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스노 크래시의 실체를 추적하면서 거대한 배후 세력과 맞닥뜨리게 된다.

'꿈꾸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

이 사이트는 처음 만들어지자마자 현실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많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세컨드 라이프의 주민이 될 수 있는 시간만 기다렸다. '세컨드 라이프'를 창조한 린든랩은 21세기 가장 전도유망한 벤처기업으로 떠올랐다. '세컨드 라이프의 조물주'란 별명이 붙은 로즈데일의 목표는 소설 <스노 크래시>처럼 '꿈꾸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2007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린든랩의 최고경영자 필립 로즈데일은 세컨드 라이프를 웹, 온라인 게임, 소셜네트워킹, 사용자 생성 콘텐츠, 창의적인 애플리케이션, 통신기술 등이 통합된 차세대 인터넷의 비전으로 선보였고, 게임, 영화, 음악, 문구 팬시 등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해나갔다. 한때 세컨드 라이프 안에서 이뤄지는 경제 규모가 미국 뉴욕시의 4배에 달했고, 실제로 세컨드 라이프에서 창업하고 돈도 버는 사람들이 수만명에 이른 적도 있다. 린든랩 자체 추산으로는, 세컨드 라이프 주민들이 창출한 국내총생산(GDP)이 5억달러를 넘어선 적도 있었다고 한다.

왜일까?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정보기술(IT) 환경에 살고 있는 한국 사용자들을 공략하기에 세컨드 라이프는 문제가 많았다. 가상공간 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한글 서비스가 턱없이 미흡했고, 우리나라 사용자들에게 인지적으로 친숙한 환경도 아니었다. 게다가 국내 게임산업진흥법은 온라인 게임에서 얻은 유무형 결과물의 환전을 금지하고 있어 세컨드 라이프와 '퍼스트 라이프'(현실세계) 사이의 관계는 아직 불투명하다.

페이스북과 네이버 오갈 '또다른 나'

실제로 미국의 기술 컨설팅 회사 가트너는 앞으로 평소 나의 페이스북, 카카오톡 대화 등을 통해 파악한 내 캐릭터가 담긴 '가상의 나'가 소셜미디어에서 돌아다니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내가 가상의 나를 보고 그 캐릭터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날이 올 것이란 얘기다.

차세대 아바타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근사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다. 지금 현재 게임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사용하는 나의 아바타에 옷을 입히고 아이템을 추가하고 근사하게 꾸미는 데 드는 매출 규모는 약 1조원. 그러나 웹 공간을 마구 활보하는 아바타가 등장한다면, 이 시장은 10배 이상 확대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내가 만든 아이디 하나만으로 새로운 인물이 되기엔 역부족이었지만, 인터넷을 활보하는 아바타가 나로 인식되는 순간,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옷을 사고 화장을 하듯 아바타를 가꾸는 데 돈과 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신경과학적 측면에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고 눈이나 피부 등으로 감지할 수 있으면 나의 일부라고 인식한다. 나의 정체성 안에는 '감각과 통제'라는 가장 말초적인 대뇌 과정이 필수적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 손을 붓으로 살살 간지럼을 태우면 간지럼을 느낄 수 있고 손을 뺄 경우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손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아바타는 분신·화신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바타라'(avataara)에서 유래했다. 2009년 개봉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내가 나를 인식하는 뇌 영역

실제로 필립 로즈데일은 일본 연구팀과 함께 흥미로운 뇌파 실험을 진행했다. 사람들의 뇌파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읽고 세컨드 라이프의 캐릭터를 움직이도록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물론 이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는 전신마비 환자들이 불편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목적으로 연구되어 왔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세컨드 라이프를 이용해 활력을 되찾고 건강회복 효과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생활에서 대화를 나누고 쇼핑도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될 것이다. 세컨드 라이프의 다양한 발전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다.

아직 이른 판단이지만, 아바타는 아주 자연스런 '확장된 자아'가 될 수 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고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존재로 변모할 것이다. 사람들은 아바타와의 동일시를 통해 앞으로 온라인상에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이제 온라인쇼핑몰이 유혹해야 할 대상은 '우리들의 아바타'인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