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의 함정과 운칠기삼의 윤리학

흥미로운 실험들을 통해서 검증되기도 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확인되기도 한 한 가지 사실은 운의 역할을 흔쾌하게 인정할수록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성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보다 기꺼이 공익을 위해 내놓는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더욱 중요하고도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이 더욱 행복과 건강을 누린다는 것이 수많은 심리학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2016-10-27     유종일
ⓒGettyimage/이매진스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 8. 능력주의의 함정과 운칠기삼의 윤리학

프랑스 혁명에 나타난 근대사회의 근본이상인 평등주의 사상은 출생신분에 따라 당첨확률이 달라지는 신분제를 철폐하고, 누구나 차별 없이 그의 능력에 따라 당첨확률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절대군주나 국가권력의 통제를 벗어나 누구나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장경제 제도도 역시 기회의 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곧 개인의 능력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고 보상이 정해지는 능력주의(meritocracy)를 말한다. 복권의 당첨확률을 신분이나 어떤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정하지 않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변하도록 하는 것은 기회 평등의 사상에 부합할 뿐더러 우리가 실력을 키우기 노력할 유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1) 능력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우리가 이제껏 살펴보았듯이 능력 혹은 실력이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력을 결정하는 데에는 기회와 여건이라는 외부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재능과 노력이라는 개인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기회와 여건에는 순전히 우연적인 요소도 작용하지만 태생에 따른 가정과 사회의 환경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재능은 말 할 것도 없고, 노력하고자 하는 성격도 상당 부분 태생과 환경이 결정한다. 그렇다면 결국 실력도 인생 게임의 과정에 일어나는 우연과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태생적 배경이 결정하는 운명에 의해 거의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운에 따라 결정되는 실력을 사회적 보상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너무 임의적이고 불공평하지 않은가? 어찌 보면 능력주의는 임의적이고 불공평한 기준을 객관적이고 공평한 기준으로 바꾸기 위해 고안된 것이지만, 스스로의 목적 달성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롤스와 같은 평등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능력주의는 결국 기득권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성공한 사람이 운의 역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심리상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2) 흥미로운 실험들을 통해서 검증되기도 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확인되기도 한 한 가지 사실은 운의 역할을 흔쾌하게 인정할수록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성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보다 기꺼이 공익을 위해 내놓는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더욱 중요하고도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이 더욱 행복과 건강을 누린다는 것이 수많은 심리학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부자증세에 반대하고 심지어는 부자감세를 위해 로비를 하는 부자들은 워렌 버핏과 같이 부자들의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행복감이 떨어지고 건강도 나쁘다니, 작은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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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obert H. Frank, Success and Luck: Good Fortune and the Myth of Meritocrac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6.

,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1. 어느 CEO의 야릇한 이혼소송과 '행운의 보수'

2. 운의 사회적 기능과 '카지노 자본주의'

3. 마태효과와 시장경제의 '운칠기삼'

4. 승자독식 경쟁과 운의 비중

5. 특별한 기회라는 행운

6.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는 행운

7. 타고난 재능과 성격이라는 행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