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카와 아야는 한국에 메시지를 보내며 왜 눈물을 참았나?

2016-10-26     박세회

일본 최초의 트랜스젠더 정치인인 가미카와 아야는 이 세타가야 구의 구의원이다.

- 허프 : 한국도 일본처럼 성 동일성 장애를 가진 사람이 호적상의 성별을 바꾸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일본과 다른 점이라면 성인도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반드시 성전환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설명해 주세요.

= 가미카와 : 트랜스젠더도 그렇지만 레즈비언인 친구들도 대부분의 경우 가장 커밍아웃하기 어려운 상대가 바로 부모입니다. 그 이유는 관계를 끊을 수 없기 때문이죠.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상대에게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부정당하는 건 사람으로서 가장 괴로운 일입니다. 가장 소중한 일을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지금 한국의 요건대로라면) 부모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법률상 성별을 바꿀 수 없을 뿐 아니라 가족에게 인정도 받을 수 없는 이중의 고통이 됩니다. 사회 환경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살아가는 게 정말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무척 슬픈 일입니다.

가미카와가 성별 변경의 요건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이유는, 자신이 성별을 변경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을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내 성의 존재 형태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면서도 애써 현실을 보지 않으려 했다. 스스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무서웠다. (중략) 나는 남자의 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줄곧 내 연애 대상은 남자였다. 그럼 나는 ‘동성애자’인 걸까?”-가미카와 아야/‘바꾸어나가는 용기’

그 동안 이면으로는 ‘호적상은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며 고용보험, 건강보험, 연금 수첩의 성별이라도 바꿔 보려고 관공서의 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실패. 결국, 호적을 바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이날 '바꾸어나가는 용기'의 출간기념회에는 100여 명의 독자와 취재진이 몰렸다.

가미카와는 이 일로 크게 실망했다. ‘행정과 사법이 대응해주지 않는다면 입법부(국회)를 움직여야 한다’는 마음으로 본격적인 진정활동에 뛰어든 것이 2002년. 성별을 바꿀 수 있는 법을 입안해 주십사 정치인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지만 좀처럼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이에니시 사토루 의원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바꾸어 나가는 용기’/한울 엠플러스

- 허프 : 당시 출마 신청서에 ‘여성’으로 표기하는 심정이 어땠나요?

=가미카와 : 그때까지 쭉 비밀로 해오던 일인데, (사실상)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었고, 매스컴까지 와서 보도하는 바람에 널리 알려져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선거에 나온 이상 이겨야 하기에 인터뷰에 참여하는 게 괴롭기도 했지만, 힘을 내서 취재에 응했습니다.

- 허프 : 여성으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하자 아버님께서 ‘돈키호테가 되지 말라’고 하셨다고요. 그 말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셨나요?

= 가미카와 :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진의, 그 진짜 목적을 이해받지 못하고 단순히 이상한 사람이라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끝내지 말아달라. (이왕 한 이상) 너의 진심을 이해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해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행정과 사법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입법으로’라는 가미카와의 꿈은 생각보다 일찍 이뤄졌다. 2003년 7월 10일 일본은 보수적인 자민당의 주도로 '성 동일성 장애인 성별취급 특례법'을 통과시킨다. 물론 쉬웠을 리가 없다. 가미카와는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자민당의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해야 했다.

- 허프 :호적상의 성별을 바꾸는 ‘성 동일성 장애인 특례법’을 통과시킬 때 앞장서서 양원에 초당적인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 당시 도움을 준 이에니시 사토루(민주당), 후쿠시마 미즈호(사민당), 아오키 미키오(자민당) 등은 전부 다른 당 소속이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 가미카와 : 당시 총 214명 중에서 100명을 만났습니다. 그중에는 역시 전혀 이해 못 하는 사람도 있었고 완전히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이해해 줄 만한 사람을 소개받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과 함께 당내의 높은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반대하던 의원들이라도 (법안의 대상인)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세상은 아무런 귀띔도 없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바뀌려면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 허프 : 사이타마 의과대학이 큰 계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가미카와 : 1995년에 사이타마의 의과대학에서 ‘성전환 수술’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나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사회적 관심이 있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시 사이타마 의과대학의 한 교수님(하라시나 다카오)께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을 직접 만나 곤란함을 듣고, 사회적으로 성전환 수술이 용인되지 않는다는 얘기에 분노해 ‘성전환치료의 임상적 연구’를 신청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1. 대한민국 국적자·19세 이상 행위능력자·현재 혼인 중이 아니며 미성년인 자녀가 없는 경우.

3.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는지 여부.

5. 범죄 또는 탈법 행위에 이용할 의도나 목적이 있는지 여부.

-허핑턴포스트(2016년 06월 07일)

-허프 : 소수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 가미카와 : 사회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면 ‘여기에 바꿔야만 할 요구가 있다’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그 방법으로 ‘출마’를 택한 거지요. 그것으로 매스컴의 주목을 모으는 데 성공해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는 있었지만, 이게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저는 한국의 법률은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자신의 필요를 관공서에, 법원에 호소할 때 기본적으로 프라이버시는 지켜집니다. 그러니 괜히 두려워하지 말고 프라이버시를 지켜가면서 침묵하지 않는,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최초의 트랜스젠더 정치인 가미카와 아야가 남긴 말이다.

편집자 주 : 'Gender identity disorders'는 우리나라에서는 '성주체성 장애'로 번역합니다. 다만 이번 인터뷰의 경우 법률 등에 고유명사로 표현되어있어 일본에서 사용하는 번역어 '성 동일성 장애'로 표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