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름이다. 타투를 하자(이미지)

2015-04-30     곽상아 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타투안내서

“지난주 워크숍에 우연히 참가했다가 타투에 관심이 생겨 친구 2명을 데리고 또 왔어요. 작은 타투를 가볍게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 여러 타투 장르 얘기를 듣고 ‘뉴스쿨’(미국에서 유래한 타투의 한 스타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최연지(26)씨가 말했다. 심상민(20)씨는 “지나가다 벽에 붙은 그림이 멋있어서 들어왔다”고 했다. “사실 타투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는데, 얘기 들어보니 예술의 한 종류라는 걸 알게 됐어요. 기회가 되면 저런 멋진 그림을 타투로 새겨보고 싶어요.”

타투 시즌이 돌아왔다. 반팔 옷을 입기 시작하는 요맘때부터 추석 연휴까지가 타투 시술이 가장 활발한 기간이다. 매년 돌아오는 타투 시즌이지만 해가 갈수록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타투이스트들은 입을 모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문신은 조폭문화를 상징했다. 경찰에 검거된 조폭 무리를 비추는 뉴스 화면에는 어김없이 온몸을 시퍼렇게 뒤덮은 문신이 등장했다. 동네 목욕탕에서 문신을 한 남자라도 만나면 괜히 위축되곤 했다. 타투이스트가 공포에 떨면서 ‘형님’들 몸에 문신을 새겨줬다는 무용담도 심심찮게 전해진다. 타투는 문신의 영어 표현일 뿐이지만, 이처럼 문신이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 고정관념 때문에 타투로 일컫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통용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타투는 이제 조폭이나 일부 연예인·예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옆집 평범한 여대생의 손목에도, 앞집 평범한 회사원의 정장 셔츠 안에도 타투가 자리잡고 있는 시대가 됐다. ‘서울잉크’를 운영하는 타투이스트 정길준은 “오후 6~7시에 양복 차림으로 와서 상담하고 타투를 시술받는 분들도 많다. 엄마와 딸이 같이 오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타투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보편화돼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외국에선 타투가 주류 대중문화로 완벽하게 자리잡았다. 유명 타투이스트들이 웬만한 연예인이나 예술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타투 티브이쇼도 생겼고, 패션업계와 타투이스트의 협업도 빈번하게 이뤄진다. 나이키가 타투이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 운동화와 점퍼를 처음 선보인 게 10년도 더 된 일이다. 타투 문화가 널리 퍼진 미국과 일본에선 타투 컨벤션(박람회)도 자주 열린다. 정길준은 한때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타투 컨벤션에도 참가했다. 컨벤션 대회에서 우승해 받은 트로피도 4개나 된다. “외국인들은 미용실이나 이발소 가듯 타투숍을 가요. 제가 한국에서 운영하는 타투숍 고객도 60% 이상이 외국인인데, 한국에 여행 왔다가 기념하려고 문신을 새기는 이들도 많아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한국 아이를 입양하러 온 부부가 아이의 한국 이름 ‘현’을 각자 팔에 한글로 새긴 사례(맨 위 왼쪽 사진)도 있다고 정길준은 귀띔했다. 그들에겐 타투가 미적 표현이자 특별한 기억의 저장고인 셈이다.

국내에서도 타투 문화가 차츰 변화하고 있다. 패션타투나 레터링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좀더 큰 문신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한 디자인에 알록달록 색깔이 들어가는 미국 전통 문신 올드스쿨이 최근 유행하고 있지만, 올드스쿨에서 파생된 뉴스쿨, 일본 전통 문신 이레즈미, 흑백사진 같은 블랙 앤 그레이, 직선과 곡선 위주의 트라이벌 등 다양한 장르를 찾는 이들이 느는 추세다. 반려동물이나 가족 얼굴을 새기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타투 문화가 더욱 자연스러워질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국회에선 타투를 양성화하는 법안 제정을 추진중이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레이지슬로우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중장년층이 되면 우리도 외국처럼 타투가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잡을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