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금지하면서 미혼모의 양육은 지원하지 않는 나라

2016-10-22     곽상아 기자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

이씨는 출산 직전 새벽 2시까지 포장마차에서 일을 하고 월세 25만원의 고시텔에서 홀로 아이를 낳은 뒤, “혼자 사는 여자가 출산했다는 것이 알려질까 두려워서” 우는 아이의 입을 막은 채 탯줄을 자르고 몸을 씻다가 아기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난방비도, 전화요금도 연체될 정도로 생활비에 쪼들리는 상황에서, 이씨는 아기의 시신을 수건으로 감싸 방 한쪽에 밀어둔 채 6일 동안이나 그 방에서 구슬 꿰는 부업을 하거나 식당일을 다녔다고 했다. 아기 엄마는 영아 살해와 시신 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우리나라 혼외자녀 출생률은 1.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36위로 가장 낮다. 미국이 38.5%, 프랑스나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 50% 이상인 것에 비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아기는 잉태되어도 태어나지 못하고 태어나도 길러지지 못한다. 국내 미혼 임산부의 96%가 낙태를 하고 미혼모 자녀의 70%가 입양된다고 ‘추정’될 뿐, 정확한 통계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이란 무엇일까? 낙태나 입양을 택하면 비정한 모정이 되고, 양육을 택하면 미혼모라는 ‘주홍글씨’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 이씨의 경우처럼 영아를 유기하거나 살해하는 끔찍한 경우도 적지 않다. 미혼모의 임신은 모두의 문제이면서, 누구도 드러내길 꺼려 하는 금기로 존재한다.

를 본뜬 도안이 벽면 가득 그려져 있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뉴스레터의 고정칼럼 제목이 ‘금순이네 칼럼’이던데, 금순이가 누구죠?

-요즘엔 미혼 대신 비혼이란 말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요. ‘미혼’이란 말에는, ‘마땅히 해야 하는 결혼을 아직 안 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서…. 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서 말하는 미혼모란 정확히 어떤 개념이지요?

-단체 소개를 좀 해주세요. 이걸 처음 만든 사람은 외국분이라면서요?

-왜요?

-그래서 ‘고아수출국’으로 불렸잖아요.

‘낳을 거면 입양동의서부터 쓰라’던 시절

박영미도 그 무렵 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 합류했다. 그는 미혼모가 아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와 노동운동을 하면서 아이 셋을 낳고 남편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여성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지원하던 그는 2007년 ‘한부모 네트워크’ 설립에 참여하다가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적 지탄 때문에 섣불리 자신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그래서 이혼이나 사별로 한부모가 된 여성보다도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들이었다. 2008년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가 된 박영미는 본격적으로 미혼모 지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리처드 보아스 박사와 해외 후원자들의 지원에 의지하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2012년 국내 후원자에 기반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재발족했다.

-그런데 좀 납득이 안 갑니다. 2008년 처음 보아스 박사가 시작할 때까지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게 지원하는 기관이 우리나라에 없었단 말입니까?

-그런 문제를 해외 입양아의 양부모가 제기하고 나섰다는 게 아이러니군요. 자기가 입양해서 예쁘게 키우고는 있지만, 아이는 가급적 친모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잖아요.

“엄마는 입양이 최선이었다는 걸 철석같이 믿으시는데 어떻게 딸이, 입양 부모가 성폭행했다는 말을 하겠는가. 어떻게 인종차별이 심각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나. 백인 양부모는 인종차별이 뭔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아서 그 차별을 막고자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제인 정 트렌카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 555쪽)

-그동안 여성계가 미혼모 문제를 너무 등한시해왔던 것 아닙니까?

미혼모는 문란하고 무책임하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이 있지요. 미혼모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륜녀, 헤픈 여자, 무책임한 인간이란 의미를 담고 있어요. 실제로 미혼모가 되는 사유는 어떤 것들이죠?

-그럴 때 여성을 지탄하는 말이 ‘그러길래 지 몸은 지가 간수했어야지!’란 거죠.

-하긴, 기혼자들도 피임에 실패해서 아이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죠.

-10대 청소년들이 미혼모가 되는 경우 비난은 더욱 거칠어집니다.

-양육미혼모들의 연령대는 어떻게 됩니까?

-아, 정말요? 10대가 아니고요?

-26살이라고요? 미혼모가 되는 건 대개 경제력 없고 갈 곳 없는 10대들인 줄 알았어요.

-그럼 혼자 독립해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여건 아닌가요?

-혼인신고서를 왜요? 출산휴가 받는 건 혼인 여부랑 상관없잖아요.

미혼모는 있어도 미혼부는 없다. 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미혼부와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경우는 78%, 미혼부로부터 양육비를 지원받는 경우는 9.4%에 불과하다.

-친자확인소송을 하고 양육비 청구를 하면 받아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낙태를 하면 모정도 없는 비정한 엄마가 되고, 낳아서 기르려고 하면 아이를 망치고 남자 앞길을 가로막는 재앙 덩어리가 된다. 여성은 어떤 경우에도 죄인이다.

낙태와 양육지원은 상반되지 않는다

-미혼모의 사회적·경제적 위치가 불안정하다 보니, 미혼모의 양육이 아동학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미혼모라고 아동학대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없다?

-미혼모라고 하면 왠지 무책임하고 결핍된 사람으로 보는 편견 때문이겠죠.

-저런….

-그랬겠죠.

-그분은 자기 소신을 택하셨지만, 실제로 그 과정에서 낙태하거나 입양을 선택했다고 해서 어떻게 비난을 할 수 있겠어요?

“그래요. 미혼모가 아이를 버리는 게 아니라, 이 사회가 미혼모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가는 셈이죠.”

-비혼 임신여성의 낙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낙태는 불법입니다. 최근 낙태 허용을 둘러싸고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미혼모의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자’는 것과 ‘여성의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은 상반되는 논리인가요?

-낙태를 하든 아이를 낳든 여성의 자기결정권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비난받을 일도, 동정받을 일도 아니다

-여성운동을 오래 하셨는데, 미혼모들이 아무래도 상처에 많이 노출되는 분들이다 보니 함께 활동하는 데 특별히 조심스럽거나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미혼모를 자선이나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게 잘못되었다면, 우리가 미혼모들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뭐죠? 왜 그들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적으로 그들 편이 되어야 하죠?

낙태를 금지하면서 미혼모의 양육을 지원하지 않는 나라는 잔인하다. 생명의 소중함을 훈계하면서 아기를 낳은 여성의 생명과 명예를 난도질하는 세상은 위선적이다. 박영미 대표는 다시 한번 힘주어서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녹취 심지연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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