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100년과 '1의 전진'

1970년부터 1990년까지의 경제발전기, 우리는 수출 1억 불, 국민소득 1만 불, 수출 100만 대 등의 구호를 목 놓아 외쳤다. 모든 목표는 늘 0이라는 숫자로 끝났다. 하지만 아산은 달랐다. 1976년 우리가 처음 만든 자동차 포니의 10만 대 수출을 기념하는 자리에는 <100,001대 수출 기념>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17살의 나이에 몰래 가지고 나온 아버지의 소 한 마리 값을 갚기 위해 몰고 간 소는 1,000마리가 아니라 1,001마리였다.

2015-03-06     김우정

100년 전에 태어난 한 사람.

사실 그의 가출은 한 번이 아니었다. 무려 4번의 가출 시도(?) 끝에 상경에 성공한다. 특히 3번째 가출 때는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들고 도망친 것으로 유명하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 복흥상회라는 쌀가게 점원으로 취직한 아산은 특유의 열정을 인정받아 취직 3년 만에 월급으로 쌀 20가마를 받을 정도가 되었다. 1938년 주인 집 아들이 가산을 탕진하자 주인은 아산에게 가게를 물려준다.

기적이 가능하다고 믿은 사람.

1975년 주베일 항만공사의 수주는 그가 만든 가장 위대한 기적 중의 하나다. 당시 석유 수출대국이었던 사우디 왕국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국가개발을 하겠다는 야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가 바로 주베일 항만공사였다. 당시 공사비가 대한민국 국가예산의 50%에 육박할 정도였으니 그 규모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가장 마지막으로 입찰에 참여, 입찰 4일 전 보증금을 겨우 확보했음에도 결국 승리했다.

죽여주는 생각은 1의 전진.

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17살의 나이에 몰래 가지고 나온 아버지의 소 한 마리 값을 갚기 위해 몰고 간 소는 1,000마리가 아니라 1,001마리였다.

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전진과 멈춤의 싸움,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의 전쟁이 바로 지금 이 시대다.

에서 찾는 것은 너무 막연한 제안일까? 사소한 1의 차이가 모든 결과를 바꾼다고 믿는 일부터 시작하는 일이 정말 불가능할까? 아산의 말처럼, 해보기나 하자. 결국 세상을 구하는 영웅은 행동하는 1명이니 말이다.

시련이지 실패가 아니야, 길을 모르면 길을 찾고 길이 없으면 길을 닦아야지. by 아산 정주영

※ 본 원고는 마케팅 전문 매거진 월간 '아이엠'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