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흔들고 있는 건 네 몸이지, 내 몸이 아니었어

A는 인생에서 거쳐온 고비라곤 수능밖에 없는 지루한 서사의 인간이었다. 세상에 대해 평론하고 싶은 것이라곤 맛집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이 가게 점원 태도가 어쩌네 저쩌네' 하며 아르바이트생의 인성을 운운하는 A를 볼 때면 나는 그를 멸시했다. 사랑이 도취나 찬양이 아닐 수 있고, 어떤 욕구의 교환일 수 있다는 걸 A는 내게 가르쳐줬다. 내가 그를 멸시했던 것은 그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2016-10-06     조소담

소녀, 소년을 만나다 02 | 네가 흔들고 있는 건 네 몸이지, 내 몸이 아니었어

너는 장례식장에 있었다

고속버스를 내리고도 한참을 갔다. 택시가 잘 잡히지도 않는 동네였다. 한가로이 달리던 차 하나를 잡았다. 장례식장 이름을 말하니 기사는 대꾸도 없이 엑셀을 밟았다. 동네가 오밀조밀하다고 해야할지, 덜 채워졌다고 해야할지. 눈높이보다 높이 세운 건물이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장례식장 주변은 휑했다. 한 층 짜리 건물에 주차장만 넓었다. 도로변에 놓인 그 곳은 양 옆으로 초라한 슈퍼와 구멍가게를 끼고 있었다. 누가 엎어놓고 떠난 마분지 박스 같았다. 바람에 덜덜 흔들릴 것 같았다.

나는 육개장 그릇을 나르지 못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방에 갔다가 A의 어머니에게 혼쭐이 났다. 등 떠밀려 상에 앉아 편육을 먹었다. 내 생에 가장 맛없는 편육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죽음에 출장을 와서는 누가 버린 재활용 가구처럼 가만 앉아 편육을 씹었다. 속으로 주말이 아깝다 생각했다. A는 나를 신경 써주었다. 내 앞에 앉아 있어주었다. 그가 신경을 써주는 게 불편했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나은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달라는 걸 주고, 나는 받고 싶은 걸 받고

A와 있는 시간은 장례식에서 식은 편육을 먹는 것만큼 지루할 때가 많았다. 그는 나를 보고 자주 감탄했다.

이 말은 덧붙여 번역하자면 이랬다.

A는 인생에서 거쳐온 고비라곤 수능밖에 없는 지루한 서사의 인간이었다. 세상에 대해 평론하고 싶은 것이라곤 맛집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이 가게 점원 태도가 어쩌네 저쩌네' 하며 아르바이트생의 인성을 운운하는 A를 볼 때면 나는 그를 멸시했다. 사랑이 도취나 찬양이 아닐 수 있고, 어떤 욕구의 교환일 수 있다는 걸 A는 내게 가르쳐줬다. 내가 그를 멸시했던 것은 그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너를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해.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동시에 너를 만나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

A는 혼란스러운 그대로 승질을 내었다.

그러고는 내 제안대로 나를 만났다. 씩씩대며 뒤돌아와서는. A가 나를 욕하지 않았다면 나는 A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욕망 받이는 되지 않기로 결심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상대방도 '추호도 남의 욕망만 받아줄 생각은 없는 인간'이길 바랐다. A는 적당한 상대였다.

인간이 온혈동물이 아니었다면 연애 같은 건

"좋았어?"

'혀는 미꾸라지 같았어.

네가 흔들고 있는 건 네 몸이지, 내 몸이 아니었어.

말해봤자 너는 못 알아듣고 '졸리면 자자'고 날 안았을 것이다. 말이야 뭐 쓸모가 없지. 너나 나나 우리는 혼잣말만 하는 연애를 하고 있잖아.

나는 영민해서 포기가 빨랐다. 얻을 수 있는 것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줄 알았다. 헛된 기대라고 선 긋는 것이 굿잡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혼잣말 같은 연애는 생각보다 길었고, 그 연애가 끝날 때쯤엔 '다시 이런 연애를 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를 바 없는 남자를 또 만났다.

모든 일은 소녀가 소년을 만나는 그때 일어납니다. 몇 가지 진실과, 몇 가지의 거짓으로 써 내려가겠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기록. <소녀,소년을 만나다>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연재의 다른 글은 블로그 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