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에 담겨 있는 역사 속 장면 3가지

2016-10-05     PyungSeok Koh

1. 태양왕 루이 14세는 진짜 태양 역을 맡았다.

“루이 14세가 몸소 발레를 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레퍼토리 중 하나인 ‘밤’이라는 궁정발레에서 그는 태양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절대왕정의 권력을 한 손에 장악한 국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1661년 루이 14세는 이탈리아인 한 명을 음악가로 발탁한다. …. 륄리가 국왕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상 깊게 남긴 것은 작곡에 참여한 발레 ‘바’에 의해서다. 이 발레에서 당시 15세였던 국왕은 태양 역할로 춤을 췄고, 륄리는 양치기 역으로 함께 공연했다. 이 발레는 국왕이 즐겨 춤추었던 곡목으로 ‘태양왕’이라는 별명의 유래가 되었다. 이 공연에서 왕의 신임을 돈독하게 산 륄리는 그로부터 한 달 후, 국왕으로부터 ‘기악 작곡가’로 임명받는다. 그후 그는 국왕이 애호하는 발레 음악 작곡에 직접 참여하고 국왕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 임면권을 최대한으로 활용한다. …. 작곡에 있어서도 …. 모두 왕권과 결부해서 인허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륄리는 이 체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또한 활용했다.”(책 ‘클래식을 뒤흔든 세계사’, 니시하라 미노루 저)

2. 프랑스 혁명에도 음악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다양한 혁명가가 불렸고, 민중의 열기는 고무됐다. …. 지도력과 혁명에 대한 공감, 작품의 가치, 대중들에게 준 감동으로 본다면 고세크가 이 혁명기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였고, 혁명의 열기와 광기와 이상, 현실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인물이었다. ….1789년 혁명이 발발하자 그는 혁명에 공감하여 오페라 극장 부속 가창학교 교장을 비롯해 오페라 극장에서 맡은 일을 모두 그만두고, 베르나르 사레트와 함께 국민위병군악대의 지휘와 지도를 맡았다. …. 고세크의 작품은 혁명의 추이를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1790년에 작곡한 ‘장송행진곡’은 낭시 전투의 희생자를 추도하기 위한 작품으로, 취주악으로 편성된 식전음악의 최초 작품이기도 했다.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가 처형되었다. 이 처형은 혁명의 절정으로 고세크는 이 처형을 축하하는 식전을 위하여 ‘공화국의 승리’를 작곡해 처형 직후인 1월 27일에 오페라 극장에서 상연했다. 이 축전극은 국왕의 처형식에 대한 청중의 흥분에 휩싸여 큰 갈채를 받았다.”(책 ‘클래식을 뒤흔든 세계사’, 니시하라 미노루 저)

3. 베토벤도 자신의 음악을 부지런히 세일즈하였다.

“베토벤이 주변 각 주의 귀족들에게 작품을 헌정한 것을 보면 에르데디 백작 부인에게 헌정된 ‘첼로소나타 op.102’를 제외하고 모두 빈 회의 전인 1810년까지의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후 베토벤의 작품 헌정은 빈 회의에 참석한 국왕과 관계자, 러시아의 가리친 후작 등으로 옮겨가고, 빈에서는 실업가나 조카 카를의 상사인 연대장 등 베토벤의 현실적인 활동과 결부된 인물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는 나폴레옹 전쟁 결과 이제까지의 귀족이 후원자로서의 재력을 상실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이러한 큰 변동 속에서 보헤미아 등의 부유한 귀족들이 점점 사라지자 베토벤은 오스트리아 이외의 각지에서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야만 했다. 그가 각국의 국왕을 대상으로 ‘장엄 미사곡’의 수기 악보를 판매한 것은 새로운 후원자를 찾고자 한 것이었다.” (책 ‘클래식을 뒤흔든 세계사’, 니시하라 미노루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