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민, 5년을 준비했는데 현지에서 1년반을 울었다

지도에서 집 근처 10km 기공소를 찾아보니 60곳이더라고요. 15곳은 이메일로 지원하고 45곳은 제가 직접 찾아갔어요. 제 소개가 담긴 이력서와 (지금까지 만든 작품이 있는) A4 23장짜리 포트폴리오를 들고 갔죠. 60곳 중에 2곳에서만 '안 된다'는 답장을 받았어요. 나머지는 전혀 연락이 없었고요. 일단 외국인이라 꺼렸고, 두 번째는 한국 학위는 인정할 수 없다, 세 번째는 언어의 문제였어요. 단 한 곳도 안 되니까 그때는 너무 충격이 컸어요. 내가 독일에서 일할 수 있을까 좌절했죠.

2016-10-05     김병철

[이민자 인터뷰③] 독일 에센 김성길, 정보경

우리(김병철, 안선희)는 1년 간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이민자들을 만나고 있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하고자 한다.

김성길(30세), 정보경(27세)

- 거주지 : 독일 에센

지난 9월 9일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에센에 방문했다.

김성길 Timeline

2007년 대학 자퇴

2010년 2차 대학 입학(체육학과)

2014년 1월 결혼

2015년 9월 치기공소 취업

정보경 Timeline

2010년 2차 대학 입학(치기공과)

2014년 1월 결혼

2016년 5월 치과 취업(치위생사)

지난 9월 7일 에센의 한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 독일 이민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이스터(Meister)

- 보경씨가 처음 독일로 가자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 여러 도시 중에 에센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김성길씨가 쨈과 동네 산책을 하고 있다. ©정보경

이민자의 첫 번째 관문 - 관공서와 언어

둘은 바로 어학원을 등록했고, 성길씨는 이 와중에도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취업이 될 때까지 마냥 돈만 쓸 수는 없었다. 짬짬이 한국인 이사, 식당 일을 하면서 집 주변의 치기공소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는 외국인이었고 독일어가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보경씨가 우연히 신문에서 치기공사를 구하는 광고를 발견했다. 성길씨에게 알리기도 전에 남편의 이력서를 제출했다. 곧 면접을 보자는 회신이 왔다. 하늘이 돕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성길씨는 독일에 도착한 지 9개월 만에 정말 어렵게 (실습)취업을 했다. 1년짜리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끝나기 3개월 전이었다.

- 취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구직 활동은 어떻게 했나요?

- 지금 회사는 어떻게 들어간 거예요?

보경 : 오빠가 3일 정도 가채용 근무(Probearbeiten·시급 8.5유로)를 한 후, 일하러 나오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수습으로 3개월(일 4시간 근무·월 400유로) 일하는 거라 정규 계약도 아니었는데도요. 그런데 며칠 후 한 사장이 오빠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든 거예요. 어학원 다니는 동안 손이 굳고, 환경도 낯설어서 그랬던 건데 "이런 식으로 하면 일 못한다"라고 성질을 냈대요. 근데 (오빠가) 그 자리에서 울어버린 거예요.

독일에선 전등도 없이 전선만 나와 있는 빈 집으로 이사를 한다. 벽 페인트 칠부터 싱크대 조립까지 두 사람이 손수 꾸몄다. ©정보경

이민자의 두 번째 관문 - 취업과 노동체류허가

독일의 관공서는 담당 공무원의 판단이 중요한데, 성길씨의 담당자는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수습 근무를 마친 성길씨가 정규 근로계약을 하고 노동허가(Arbeitserlaubnis)를 신청했지만, 노동청은 이를 거부했다. 독일에서 (기공사)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독일에도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왜 외국인을 채용하느냐는 입장이었다. 한국 대학의 학위와 국가시험에 합격해 받은 자격증은 인정을 받지 못했다. 계속 노동허가가 나지 않자, 성길씨의 사장이 팔을 걷고 나섰다.

길고 긴 노동청과의 싸움을 끝내고 체류허가 예약 이메일을 받은 날 빵집에서 남편과 부둥켜안고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보경)

옆에서 이 과정을 지켜본 보경씨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한국 학위와 기공사 면허증을 포기하고, '아우스빌둥(Ausbildung)' 과정을 거치기로 한 것이다. 한국에서 이미 배운 치기공사 대신 치위생사를 하기로 했다. 요즘 보경씨는 집 근처 치과에서 일하며 일주일에 두 번 꼴로 직업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다. 교재비를 포함한 모든 학비는 치과 원장이 제공하며, 당연히 급여도 받는다.

*아우스빌둥(Ausbildung)

한국이었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의 연속

정보경

초반에 환자 치료가 오후 5시 반에 끝나서 퇴근 시간(6시)까지 휴게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원장에게 '왜 퇴근을 안 하냐'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삿날은 법정 휴일이에요. 우연찮게 원장에게 이사한다고 말했는데 "그러면 쉬라"고 해서 "고맙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고마운 게 아니라 당연히 원래 그런 거야."라더라고요. 그날 안 쉬면 정부가 '이사해야 하는데 왜 일을 시켰냐. 그러면 이 사람은 언제 이사를 하냐.'고 제재한다는 거예요.

김성길

한국에선 치과 주문을 받으면 기공소가 약 3일 안에 만들어서 보내야 해요. 그러니까 매일 새벽까지 일하는 거예요. 독일에선 최소 2주의 제작 기간을 줘요. 일이 없는 날은 퇴근 시간보다 일찍 집에 가도 되고요.

보경씨의 치과 동료 ©정보경

성길씨의 회사 동료(왼쪽부터 성길씨, 사장 1, 사장 2, 직원) ©김성길

취업 전 성길씨는 오후 5시부터 새벽까지 한인 식당에서 일하고 오전 7시에 어학원에 가는 일상을 계속했다. 주급을 받은 날이면 봉투가 담긴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은 채 새벽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아우스빌둥에 지원하던 보경씨 역시 인터넷으로 지원했던 곳에서는 단 한 곳도 답을 받지 못했고, 직접 찾아가 이력서를 낸 곳에서만 면접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 독일 이민을 추천하나요?

성길 : 독일에 오기 위해 5년을 준비했는데 미흡했어요. 5년 전이라면 대학 대신, 독일 와서 1년 정도 독일어 공부하고 아우스빌둥을 시작했을 거예요. 한국에서 쓴 학비, 생활비 따지면 차라리 그게 낫죠.

- 독일로 이민 가고 싶은 사람에게 조언을 해주세요.

성길 : 독일로 오려면 무조건 언어를 해야 해요. 여기 와서 근 2년 동안 만난 한국사람 일곱 팀 중에 한 팀 빼고 모두 돌아갔어요. 취업은 안 되고, 돈은 떨어지고, 언어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거예요. 정말 쉽지 않아요. 하지만 만약 정착한다면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맨 오른쪽은 보경씨의 설득으로 독일에서 공부 중인 보경씨의 동생이다. 한국에서 같이 온 강아지 쨈도 함께 살고 있다.

붉은 화살표가 있는 곳이 에센이다. 구글맵스 캡처

[독일]

- 기본정보

o 인구 : 8,085만 명(독일인 88.9%, 외국인 11.1%)

o 인종 : 게르만족

o 언어 : 독일어

o 교민 수 : 39,047명

출처 : 외교부

- 워킹홀리데이 정보

o 관련 사이트 : 주 독일 대한민국 대사관

- 이민 정보

o 노동허가, 체류허가 : 코트라(KOTRA)

o 관련 사이트 : BA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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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블로그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