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스토리] 1. 엄마가 우는 이유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이들은 흔히 "자식이 성소수자면 부모들은 얼마나 괴롭겠는가"라고 공격하곤 한다. 하지만 엄마는 처음 참여한 부모모임에서 "우리 아이가 성소수자라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겪을 사회적인 차별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울면서 말했다. 세상에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면 어떤 부모님도 자녀가 성소수자라서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2016-10-04     성소수자 부모모임

성소수자 부모모임 블로그 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커밍아웃 스토리] 1. 엄마가 우는 이유

스무 살 때 가장 친하던 친구에게 첫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누구라도 내가 게이임을 안다면 그 자리에서 혐오감을 표출하고 도망갈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친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받아들였고, 그렇게 나는 벽장문을 조금씩 열어갔다.

일단 편지를 이용하기로 했다. 면전에서 커밍아웃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단단하지 못했고, 말하면서도 감정이 앞서 울거나 버벅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커밍아웃을 한 뒤 며칠은 집을 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커밍아웃을 접한 부모님은 부정 - 죄책감 - 분노 등의 다양한 감정변화를 겪을 것이 분명했다. 부모님의 우는 모습을 보거나 폭언을 듣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감정적으로 안정될 때까지 집을 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련의 계획 끝에 커밍아웃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날짜를 잡아두고 며칠 전부터 부모님께 예고했다.

그날의 중대발표, 무작정 집을 나왔다

부모님이 뭐냐고 캐물어도 절대 대답해주지 않았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받아온 『성소수자 부모모임 인터뷰집- 나는 성소수자의 부모입니다』『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 가이드북』을 편지와 같이 책상에 놔두고, 부모님께 "내가 간 뒤 책상에 놔둔 것들을 읽어보라, 생각을 많이 해보셔야 할 것 같으니 나는 며칠 동안 친구 집에서 지내겠다"라고 당부하고 집을 나왔다.

부모님께

저는 동성애자예요. 부모님이 얼마나 충격이 크실지 알아요. 마음을 진정시키시고 계속 읽어주세요. 같이 놔둔 책자를 먼저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낸 책자인데 부모님께서 전혀 모르셨던, 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던 성소수자 문제에 관해 다른 성소수자 부모님들이 잘 설명해 놓은 책자예요.

부모님께 커밍아웃했을 때, 폭언을 듣거나 심하게는 집에서 내쫓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해요. 이 편지를 읽는 지금은 저를 '부정'하는 단계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엔 부모님이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실 거라 확신해요. 저는 부모님이 제가 어떤 사람이든지 제 행복을 지지해줄 분들이란 걸 알거든요.

컴퓨터 바탕화면에 <바비를 위한 기도>라는 영화를 다운받아 놨어요. 동성애자 아들 바비와 부모의 실화를 그린 영화에요. 이 영화는 부모님이 동성애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돌아오기 전에 꼭 봐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매달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정기적으로 열려요. 이번 주 토요일에도 열리는데, 시간이 맞지 않으시면 다음 달에도 참여할 수 있어요. 이 곳에는 부모님과 같은 상황을 마주했던 다른 부모님들이 계세요. 이곳에 함께 가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면 좋겠어요.

폭탄을 던지듯 편지와 책자를 던지고 친구와 함께 PC방으로 갔다. 게임은 당연히 집중할 수 없었다.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고 심한 감정 기복을 겪었다. 개운하다가 갑자기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부모님이 나를 욕하고 내가 맞받아치며 싸우는 상상은 집을 나와 제 2의 삶을 꾸려가는 그림으로 연결되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진작 상의하지... 우리가 깊이 고민하고 생각할게."

아빠에게 메시지가 온 다음 날, 엄마에게도 메시지가 왔다.

이후에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는데, 아빠는 처음에 편지를 읽고 실감이 나지 않고 그냥 멍했다고 하고, 엄마는 "이럴 줄 알았다"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심지어 엄마는 바로 다음 날 해외출장 일정이 있었는데, 밤 새 잠도 못 자고 울다 떠났다고 한다.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편지와 부모모임 책자를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바비를 위한 기도>도 보았다고 한다.

연락을 주고받은 며칠 뒤 아빠를 성소수자 부모모임 정기모임에 데려갔다. 그곳에는 우리 아빠처럼 막 자녀의 커밍아웃을 접하고 모임에 찾아온 다른 부모님들과 커밍아웃을 접한 지 몇 년이 넘어 이제는 지지자로서 우리 아이가 차별받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활동하는 부모님들, 그리고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나와 같은 당사자분들이 있었다. 아빠는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들었는데, 말을 하려고 하면 자꾸 울컥해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며칠 뒤 엄마가 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아빠와 셋이서 외식을 했다. 식사를 하면서 이전에는 엄마와 평생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대화를 이어갔다. 엄마는 적극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물어봤고 나는 질문들에 응하며 열심히 답해드렸다. 말하는 중간마다 엄마는 "네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라면서 계속 눈물을 훔쳤다.

다음 부모모임 날짜가 되었고 처음으로 엄마가 참여했다. 참여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엄마 차례가 되자 "저는 한 달 전에 아들이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해서 이곳에..."라고 말하며 계속 울었다. 아직 엄마는 힘들었던 것이다. 엄마는 모임에서 많은 말을 했다. 내 앞에서 꺼내지 못한 감정들도 울면서 털어놓았다. 모임의 많은 분들이 엄마를 공감하고, 격려해주었다. 엄마는 뒤풀이까지 참여해서 그곳의 부모님들과 늦게까지 떠들었다. 모임 이후 엄마도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자녀가 성소수자라서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이들은 흔히 "자식이 성소수자면 부모들은 얼마나 괴롭겠는가"라고 공격하곤 한다. 하지만 엄마는 처음 참여한 부모모임에서 "우리 아이가 성소수자라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겪을 사회적인 차별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울면서 말했다. 세상에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면 어떤 부모님도 자녀가 성소수자라서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글 | 빗방울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