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경찰의 진압으로 죽은 아들의 부검에 동의한 아버지는 이를 후회한다

2016-10-02     김수빈
1일 오후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투병하다 사망한 농민 고 백남기씨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대학로에서 집회를 마치고 종로1가를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신 부검에 대한 영장이 한 차례 기각된 끝에 결국 9월 28일 발부됐다.

사인이 명확한 만큼 필요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다"며 극력 반대하는 입장.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도 백남기 씨와 유사하게 경찰의 집회 진압 과정에서 참가자가 숨진 사건이 있었다. 1996년 3월 29일, 서울 종묘에서 열린 '등록금 인상 반대와 김영삼 대통령 대선자금 공개 촉구 결의대회'에 참가했다가 최루탄과 곤봉으로 진압하던 경찰에 의해 사망한 연세대 학생 노수석 씨.

이것만 놓고 보면 노씨가 경찰의 과잉진압이 아닌 평소 갖고 있던 심장의 지병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지난 1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노씨는 "당시에는 백골단이 시위진압을 하면서 곤봉으로 시위대를 두들겨 패고 최루탄을 쏟아부었다"며 "그런 부분은 부검결과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심장이 멈춰 죽었다고 사인이 나왔다. 얼마나 모순이냐"라고 말했다. (뉴스1 10월 1일)

뉴스1은 전한다. 노씨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것은 7년이 지난 후인 2003년.

문제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서울대병원의 레지던트는 백씨의 딸인 백도라지 씨에게 "본인의 이름으로 나가기는 하지만 사망원인, 병명 등에 대해서는 자신의 권한이 없다... 신찬수 부원장과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 두 분의 협의한 내용대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겨레21은 보도했다. 서울대 병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 출신이다.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놓았다. 서울대 의대 동문 365명도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 내용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말 대한민국에서 그 20년이 흐르긴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