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 재단 설립 과정을 보면 청와대가 대기업들을 압박하고 정부를 동원했다는 그런 기운이 온다

2016-09-30     허완
ⓒ연합뉴스

가 29일 입수한 대기업 내부 문건의 시나리오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됐다. <한겨레>는 모금 및 설립 과정에 숱한 의문점을 낳고 있는 미르재단이 실제 어떻게 설립됐는지 재점검해봤다. 이를 위해 대기업의 내부 문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기업들에 보낸 이메일, 설립 과정에 참여한 기업체 인사 등을 다각도로 취재했다. 취재 결과 재단 등기 완료 및 현판식이 설립 신청서를 내기 이미 사흘 전에 정확히 예고돼 있었다. 이 시간표에 무리하게 맞춰 추진된 미르재단의 설립 절차는 상상을 초월하는 편법으로 얼룩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흘 동안 군사작전을 수행하듯 긴박하게 진행된 재단 설립 과정을 재구성했다.

# 2015년 10월25일 오전

# 10월25일 오후

휴일날인데도 삼성, 현대차, 에스케이(SK), 엘지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열병식을 하는 군인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전경련은 기업들을 재촉했다. 설립신청 하루 전인 이날까지 18개 그룹의 어느 계열사가 재단 설립에 참여하는지 확정되지 않았던 탓이다. 전경련은 메일로 “부탁드릴 말씀은 오늘 중으로 어느 기업, 대표이사가 들어갈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재단 설립에 참여하는 그룹별로 매출액에 따라 모금액이 이미 할당됐지만, 정작 재단의 주인으로 참여하게 될 개별 기업은 정해지지 않았던 셈이다.

'작전 3일' - 미르재단 설립, 참여기업 집합부터 문체부 인가까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10월26일 오전

호텔에서 30분가량 떨어져 있는 한화의 재경커뮤니케이션팀 강아무개씨는 이날 오전 8시9분에 증서를 출력해 호텔로 이동했다. 삼성물산과 삼성화재는 9시5분과 9시11분에 문서를 출력했다. 호텔까지 약 30분 거리에 있는 두산은 9시13분 관리본부에서 증서를 출력했다. 지각한 기업들도 있었다.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아예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난 10시27분에 문서를 뽑아 이동했다. 현장에 있었던 기업체 한 임원은 “재산출연증서 등을 작성해 이를 출력한 뒤 가느라고 시간에 쫓겼다”고 말했다.

# 10월26일 저녁

# 10월27일

이 모든 일정은 전경련이 기업들에 미리 알린 대로 오차 없이 착착 진행됐다. 전경련은 미르재단 설립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전인 25일에 기업들한테 “27일 법인설립 등기 완료 및 창립 현판식이 열린다”고 알렸다. 실제 그대로 이뤄졌다. 사전에 잘 짜인 각본대로 기업과 정부 부처가 움직여준 것이다. 이 과정을 지켜본 대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18개 그룹의 임직원 50여명을 휴일에 동원령을 내려 월요일 아침 한 장소에 모이게 해서 가짜 서류에 법인 인감을 찍게 할 정도의 힘을 누가 가질 수 있을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에 “지난해 10월26일 그런 일들이 있었던 건 맞지만, 법무사가 참석해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