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벽장에서 나오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재미있고 고마웠던 점이 바로 내가 커밍아웃했을 때 보여준 친구들의 반응이다. "난 또 불치병에 걸려서 시한부라고 고백하는 줄 알았다."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말해줘서 고마워." 가슴이 따뜻해지는 대답이 많았다. 백미는 바로 "이제 드디어 커밍아웃하는 거야?" "이미 알고 있었는데?" 등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내가 게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내가 게이냐 아니냐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지만, 내가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자기들이 캐묻지 않는 것이 친구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태도였다.

2016-09-30     김승환

이러다 보면 결국 이성애자 친구들과는 거리가 멀어져서 서로 연락이 안하는 사이가 될 것이고, 나의 인간관계는 주로 게이들 위주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앞서 이런 고민을 했을 만한 선배 게이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형들은 나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성애자 친구는 서른 살이 넘으면 친구로 잘 남는 경우가 없으니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차라리 이 기회에 친구 관계를 한번 정리해보라고 조언했다.

누구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할까 생각해보니 남자보다는 여자가 나을 것 같았다. 그때 상황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스트레스가 적은 친구한테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유리할 것 같았다. 결국 중학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로 지낸 '민주'를 첫 번째 커밍아웃할 사람으로 결정했다. 그녀에게 중요하게 할 말이 있으니 밥을 먹자고 불러냈다. 전화와 문자로 약속 장소에 나온다는 것을 필요 이상으로 확인했다. 만나서도 다른 이야기를 빙빙 둘러서 계속하다가 결국 몇 시간의 망설임 끝에 커밍아웃을 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나의 손을 따뜻하게 잡고는 편견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재미있고 고마웠던 점이 바로 내가 커밍아웃했을 때 보여준 친구들의 반응이다. "난 또 불치병에 걸려서 시한부라고 고백하는 줄 알았다." "사고 쳐서 아기 생겼냐?" "누가 뭐래도 우린 친구이기 때문에 네 성 정체성은 우리 관계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말해줘서 고마워." 가슴이 따뜻해지는 대답이 많았다. 백미는 바로 "이제 드디어 커밍아웃하는 거야?" "이미 알고 있었는데?" 등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내가 게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내가 게이냐 아니냐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지만, 내가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자기들이 캐묻지 않는 것이 친구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태도였다.

많은 사람이 성소수자라서 외롭기만 할 것 같다고 잘못 생각한다. 난 성소수자라도 어떠한 삶을 사느냐에 따라서 또한 주변과 얼마나 진실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그 누구보다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을 주저하는 많은 성소수자들이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서 커밍아웃하기를 바란다. 그동안 잊었거나 또는 잃은 관계를 회복하기 바란다.

* 이 글은 <광수와 화니 이야기>(김조광수, 김승환 저, 시대의창)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