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맞서게 된 혐오

아이를 키우는 비혼모·미혼모들은 일을 구하기 어렵지만 일을 구해야 살아갈 수 있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도 미혼모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밤늦게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술 한잔 하자, 남편도 없는데 애 맡기고 나와서 한잔 하자, 이런 요구가 들어오고 이를 거부하면 애를 빌미 삼아 일을 그만두라고 한다. 일터만의 일도 아니다. 사는 동네에서도 미혼모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동네 아저씨들이 "'애기 엄마, 하룻밤 재워줄 수 있어?' '오늘 가면 저녁 먹여주나?'"라고 희롱한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2016-09-26     살림이야기

[ 책으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여전한 여성노동 차별과 수치심 강요 ]

혐오는 왜 생길까

이 논쟁은 기존의 진보/보수 틀을 비틀며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논쟁은 2015년에 만들어진 메갈리아라는 인터넷 사이트의 성격에 관한 것으로, 메갈리아는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메갈리아가 많이 쓰는,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남성혐오라는 미러링이라는 방법에 대한 비난·비판으로 이어졌다. 이미 신문이나 여러 매체에서 다루었고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 보면 이와 관련된 논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는 게 차별인 여성노동의 현실

기록되지 않은 노동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씀|삶창 펴냄|2016년

예를 들어,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는 매일 반말과 욕설을 듣는다. 똑바로 보지 않는다고, 웃지 않는다고 욕하는 고객들에게 맞서기라도 하면 고객은 바로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직원이 친절하지 않다고 항의한다. 결국 징계를 받는 건 노동자이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 자동차를 바로 접하면서도 이들은 고객을 상대한다는 이유로 마스크조차 쓰지 못한다. 이렇게 모욕을 받으며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2009년부터 비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로, 12년을 일해도 임금인상은 없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들에게 웃음을 요구할까?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성폭력과 여성혐오가 가부장제라는 권력에 따른 것이라면, 남성혐오는 이런 현실의 반영이다. 이 두 혐오를 같은 위치에 놓고 저울질하는 게 옳을까?

수치심 심기가 목표인 일터괴롭힘

류은숙 등은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코난북스, 2016)에서 한국만이 아니라 외국에도 만연한 일터괴롭힘(workplace harassment) 문제를 지적한다. 일터괴롭힘은 노동자의 존엄성과 인격을 모독하고 권리를 위협하는 태도와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일상적인 갈등부터 노조 탄압, 대량 해고 등의 큰 사건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류은숙·서선영·이종희 지음|코난북스 펴냄|2016년

일터괴롭힘이 일상화되면 자본가와 노동자 관계는 주인과 노예 관계로 변하고 "노예는 퇴근 후에도 노예다." 자연히 "자본가의 지배는 우리가 노동하는 시간뿐 아니라 프라이버시와 놀이, 친교 등 개인적 삶의 시간에까지 미친다." 나아가 노동자는 물건으로 취급된다. 즉 자본가는 "안 사면 그만이고, 필요 없으면 그만이고, 일을 시켜줬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지니게 된다.(191쪽) 정말 대가만 지불하면 그만인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는 노력을 다하고,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때로는 부당하고 괴로운 일까지 감수해야 한다. 임금을 받았으니 이 결과물은 네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자본주의 발상 아닌가? 이런 사회에서 인간이 혐오를 느끼지 않을 수 있나? 자신의 수치심을 타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 있을까?

하승우 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으로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자치와 공생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날카롭고 까칠해야 하지만 삶의 방향은 우정을 향해야 한다고 믿는 '까칠한 로맨티스트'입니다. 오랜 수도권 생활을 접고 충북 옥천에서 자치와 자급의 삶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살림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