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우울증 돌고래' 태산이 복순이의 약속

2015-03-01     남현지

태산이 복순이 이야기

제돌이에 가려 잊혀진 두 수족관돌고래

기형과 우울증 이기고 바다의 꿈을 꾸다

1월20일 서울대공원 해양관에서 복순이(오른쪽)가 태산이와 함께 헤엄치며 수조 밑으로 도망가는 고등어를 입에 넣고 있다.

▶ 2013년 제돌이와 친구들이 고향인 제주 바다에 돌아가고, 수족관에 외따로 남은 남방큰돌고래 복순이와 태산이. ‘너희들도 언젠가 바다로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누구도 단언을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죄책감을 덜기 위한 구두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년 넘게 좁은 수족관 내실에서 둘이서만 지낸 복순이와 태산이가 이제 바다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순이와 태산이와의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요.

활달해지렴, 한주먹 해야지, 제돌이가 너희를 기다려

“11만원에 10마리 샀어요.”

“오셨어요?”

“하나, 둘, 셋, 넷… 아홉 마리네요.”

제돌이와 엇갈린 운명

복순이와 태산이는 제돌이와 마찬가지로 제주 앞바다에 살았다. 복순이의 삶이 바뀐 건 봄볕이 따가워지던 2009년 5월1일, 제주 성산 앞바다(서귀포시 신풍리)에서 제돌이와 함께 놀고 있을 때였다. 둘은 차례로 어민이 쳐놓은 그물에 걸렸고 다시 그물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사람들이 다가와 그들을 지상으로 들어냈다. 제주 서귀포의 돌고래 공연 수족관업체 퍼시픽랜드에 700만~1000만원에 넘겨졌다. 복순이의 나이 열한 살(암컷), 제돌이의 나이 아홉 살(수컷) 때였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3년 7월18일, 세 젊은 돌고래의 운명은 극적으로 갈린다. 서울대공원에 살던 제돌이는 서울시의 야생방사 결정으로 제주 앞바다로 돌아가 야생 무리와 재회했고, 복순이, 태산이는 락스 냄새 나는 시멘트 풀장 생활을 계속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님이 두 마리는 야생방사 가두리에 보내지 않는 것에 동의했잖아요?”

말다툼은 제돌이의 야생방사를 주도한 서울시 민관공동기구 ‘제돌이시민위원회’ 위원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검찰이 몰수한 네 마리를 서울시가 가져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제돌이와 함께 어떤 돌고래를 방사하느냐였다. 건강검진을 갔다 온 시민위 소속 과학자들은 네 마리 가운데 복순이, 태산이는 부리도 기형인데다 먹이도 잘 먹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네 마리를 모두 방사하려면 가두리가 하나 더 필요하므로 우선 건강한 춘삼이, 삼팔이만 제돌이가 들어갈 가두리에 합류시키자는 현실론이 대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결단에 따라 한국 최초로 이뤄지는 야생방사인 만큼 건강이 입증되지 않은 태산이, 복순이 때문에 제돌이 방사를 실패하면 안 된다는 ‘정치적 고려’도 위원들을 암묵적으로 압박했다.

원칙론 또한 만만찮았다. 복순이, 태산이를 서울대공원으로 보내는 건 사실상 이들의 야생방사 포기를 의미했다. 몰수 돌고래들의 처리에 관심이 쏟아지면서, 울산고래생태체험관, 제주 마린파크 등 일부 수족관은 눈독을 들였다. 일본에서 돌고래를 사오려면 최소한 1억원을 줘야 하지만, 국가가 몰수한 돌고래를 전시하면 이득이 생긴다. 원칙론자들은 현실론자들에게 물었다. 우리는 돌고래를 공평하게 대한 것인가? 왜 어떤 돌고래는 되고 어떤 돌고래는 안 되는가?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현실론에 섰다.

그날 이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돌이 야생방사 예정일이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복순이, 태산이를 바다에 돌려보내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비슷했다. 그러나 바다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춘삼이, 삼팔이만 제돌이의 야생방사 대열에 합류하고, 복순이, 태산이는 4월8일 비행기를 타고 서울대공원으로 이사갔다. 조희경 대표는 장애를 가진 두 돌고래에게 약속했다.

정부에 야생방사를 요구하는 동시에 조희경 대표는 시민단체가 먼저 책임지고 행동하는 방식을 택했다. 4월8일 몰수가 집행될 때까지 네 마리의 먹이 값, 육상 이송비, 잠수부 인건비, 위성위치추적장치 구매비와 외국 전문가 초청 국제 콘퍼런스 개최 등 약 4000만원을 부담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일주일에 세 번, 하루 10만원 넘는 복순이와 태산이의 활어 값을 지급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해양보호생물 관리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당시 농림수산식품부)가 내야 할 돈이다.

제돌이 등 바다로 돌아갈 때

건강문제 크던 태산이 복순이는

서울대공원으로 보내졌다

시민단체는 굳게 약속했다

언젠가는 꼭 바다로 보내겠다고

야생방사 준비하며 활어 공급

셋째 날부터 먹기 시작했지만

어떨 땐 또 한마리도 안 먹어

이 무기력, 무관심, 극단성은

돌고래 우울증의 일종인가

고등어떼 실종사건의 반전

돌고래 사육사들은 일반적으로 죽은 냉동생선을 주면서 돌고래의 몸을 ‘야생의 몸’(wild body)에서 ‘수족관의 몸’(captive body)으로 바꾼다. 복순이, 태산이는 2009년 그물에 잡혀올 때부터 ‘수족관의 몸’이 되길 거부했다.

서울대공원에 올라온 복순이, 태산이는 천천히 나아졌다. 사육사들이 세심하게 다가갔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거부하던 냉동생선을 시원스럽게 받아먹기까지 일년이 걸렸다. 원래 사육하던 금등이(남방큰돌고래), 대포(˝), 태지(큰돌고래)와 합사시키기도 했는데, 태산이는 그간 겁쟁이였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들 사이에서 “한주먹”(선주동 사육사) 하는 게 발견됐다. 태산이의 기세가 세지면서 나이가 많아 돌고래들 사이에서 원로급으로 대접받던 금등이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태지는 항상 태산이와 ‘커플’이었던 복순이를 쫓아다녔다. 수컷들 사이에서 서열 다툼이 일어난 듯 보였다. 사육사들은 이주일 만에 합사를 중단했다.

전망이 없어 보이자 사육사들은 고등어를 손으로 꺾어 반쯤 기절시킨 뒤 냉동생선인 것처럼 모른 척 입에 넣어주기로 했다. 셋째 날, 처음으로 태산이에게서 반응이 왔다. 그날 사육일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고등어를 입에 넣어주자 복순이는 뱉고 도망가고, 태산이는 두 마리는 삼키기는 했지만 당황하고 놀란 듯 보임.’ 넷째 날, 복순이도 반응했다. ‘복순이, 태산이 고등어 입에 물고 있다가 삼킴.’

활어 급여 열흘이 넘어가자 복순이, 태산이는 고등어를 쫓기 시작했다. 열넷째 날 복순이가 4~5m 고등어를 추적해 사냥에 성공한 데 이어, 열다섯째 날 돌고래 커플은 각각 다섯 마리씩 쫓아가 먹는 야성을 과시했다. 그러던 중 1월21일 오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선주동 사육사가 말했다.

“어떻게 된 거죠?”

이날 오후 복순이, 태산이는 활어를 어려움 없이 각각 9마리, 7마리를 잡아먹었다. 이튿날에는 10마리 더해 20마리를 풀어놓았다. 다 쫓아가 잡아먹었다. 사육사들도, 활어를 가져다준 활동가 김영환씨도 신이 났다. 이튿날에는 또 10마리 추가해 30마리를 풀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번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도 대지 않았다. 돌고래 수족관은 다시 고등어 떼가 몰려 다니는 ‘고등어 수족관’이 되었다.

시민단체가 불 지피는 가운데

이번엔 ‘제돌이 방식’과는 달리

정부서 주도해 야생방사 진행

늦어도 6월엔 고향에 보낼 계획

공연업체 실무 참여 놓고 논란도

입이 삐뚤어진 복순이는

바다에 돌아가면 활달해질까

태산이는 주먹 쓰는 수컷 될까

친구 제돌이와 남방큰돌고래

114마리가 제주에서 기다린다

한화아쿠아플라넷과 마린파크 문제

복순이와 태산이는 최종 방사되기 전에 제주 야생 바다에 설치된 가두리에서 두 달 동안 야생적응 기간을 둘 예정이다. 차가운 바닷물 온도와 변화무쌍한 날씨 그리고 지속적인 활어 먹이에 적응하는 시간이다. 해양환경관리공단은 이를 위해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직원이 가두리에서 상주하면서 총괄 관리하고, 먹이 급여 등 실무는 제주지역 수족관업체인 한화아쿠아플라넷, 마린파크 등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래연구소는 두 마리에게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달아 야생방사 이후 생태 모니터링에 두 마리를 활용할 예정이다.

남방큰돌고래 복순이, 태산이 일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1980년대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돌고래 야생방사는 돌고래 수족관 전시·공연 티켓을 불매하는 민간운동에서 시작됐다. 야생 돌고래 관찰 붐이 일어나고 돌고래쇼를 비윤리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 이에 따른 정부의 수족관 규제 강화로 영국에서는 돌고래 전시·공연이 1996년 윈저사파리파크를 끝으로 사라진다. 아시아 최초로 이뤄진 2013년 제돌이의 야생방사 또한 시민단체의 요구로 촉발됐고, 복순이와 태산이의 서울대공원 이주, 관리 및 최근의 활어 공급은 이런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야생적응, 낙관적 예측이 우세

왜 태산이와 복순이는 태도를 바꾼 걸까? 인간이 갑자기 베푸는 활어에 모종의 경계심을 느꼈을까, 어차피 기다리면 다음 끼니 때 편하게 냉동생선을 먹을 수 있으니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사육사들과 ‘밀당’을 하는 걸까. 알 수 없다. 확인 불가능한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일단 복순이와 태산이의 야생적응 가능성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예측이 우세하다. 최근 두 마리의 행동을 무능에 따른 무관심보다는 의도적인 무시라는 데 비중을 둔다. 제돌이 야생방사 프로그램의 실무를 맡았던 박창희 사육사가 23일 말했다. “어쨌든 복순이, 태산이가 활어를 훌륭하게 사냥할 줄 안다는 게 중요해요. 야생에 나가서 상황이 되면 예전처럼 잡아먹을 수 있을 거예요.”

“죽은 걸 먹다가 살아 있는 걸 보면 당연히 경계를 합니다. 먹잇감으로 보는 게 아니라 경계 대상으로 보는 거죠.”

“제주 바다에 있을 때 전갱이를 먹었는지 넙치를 먹었는지 어떻게 압니까? 그게 주식이 아닐 수도 있죠. 그래도 자연에 나가서 배고프면 먹을 겁니다. 다만 얘네들이 신체 조건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그런 부분이 우려되고….”

를 찍은 돌고래 캐시(Kathy)의 죽음을 자신의 품 안에서 지켜봤다. 한눈에도 우울해 보였던 캐시는 어느 순간 물속으로 가라앉아 올라오지 않았다. 돌고래는 규칙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인간과 달리 ‘의식적으로’ 호흡한다. 그는 이런 점에서 캐시의 죽음을 의도적인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Behind the Dolphin Smile, 릭 오배리), <해양포유류백과>(Encyclopedia of Marine Mammals, 윌리엄 페린 등), <아주 상식적인 연민으로>(조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