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로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현재를 상상하다

츠바이크를 읽으며, 나는 절망의 시대에 미래를 보는 이를 응원한다. 약자의 입장에서 혐오에 저항하는 이를 응원한다. 무언가를 바꾸려 행동한다는 그 이유로 급진주의자라 불리는 이를 응원한다. "올림픽이 끝났다"고 얘기들을 하지만, 여전히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페럴림픽에 참가 중인 선수들을 응원한다. 역사가 현실을 대변하는 보수적인 도구로만 사용된다면, 때로는 역사를 잊을 필요도 있다. 현재에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가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2016-09-07     정일영
ⓒASSOCIATED PRESS

<밑줄 긋기> 『미래의 나라, 브라질』,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창민 옮김, 후마니타스, 2016

80년대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서울 올림픽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국위선양'. 국제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서 전 세계에 '코리아'를 알렸다는 것이다. 촌스럽고 거부감이 드는 논리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찌됐거나 서울 올림픽으로 한국을 알게 된 사람도 많을 것이다. 3년 전 프랑스 여행 때, 현지인들로부터 '강남스타일' 얘기를 지겹게 들었던 것처럼.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리우 올림픽을 통해 브라질을 잘 알게 되었을까?

허나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으면서도 뭔가 찜찜한 기분을 지우기 힘들다. '츠바이크의 미래'였던 현재, 지금의 브라질을 과연 '미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요즘 브라질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생각할 때, '미래의 나라'라는 표현은 솔직히 너무 아득하다. 여행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브라질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해야 하는 곳이다. 신문의 경제면에선 몇 년 전과 달리 브라질 경제를 침체나 위기로 표현한다. 정치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고, 불만이 가득한 시민들은 올림픽 성화를 꺼뜨리려 하거나 봉송로를 막아서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20세기 중반 헛된 망상에 휘둘린 급진적인 지식인의 잡문일 뿐인 걸까? 또 츠바이크는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예측할 능력이 없는 낭만주의자이거나, 뿌리 깊은 오리엔탈리즘을 남미에 적용한 자기중심적인 유럽인에 불과한 것일까?

하지만 최근 몇 해 동안 일어난 사건들 때문에 '문명'과 '문화'라는 용어의 의미에 대해 우리의 견해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우리는 '문명'과 '문화'를 흔히 생각하듯 '조직화'와 '안락함'이라는 개념과 동등한 것으로 보고 싶지 않다. 이런 치명적인 오류를 가장 많이 조장한 것은 통계다. 통계는 기계적 지식으로서, 한 나라에서 국민의 부가 얼마나 증가했고, 개인의 수입은 어떻고, 자동차와 욕실, 라디오 수신기는 평균 보급률은 얼마이고, 보험료는 얼마나 되는지 계산한다. 이런 지표에 따르면, 가장 문화적이고 문명화된 국민은 생산에 대한 열망이 가장 강하고, 가장 소비를 많이 하고, 개인당 자산이 가장 많은 국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표들은 정작 중요한 요소를 반영하지 못한다. 인간의 사고방식을 측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화와 문명의 가장 핵심적인 척도는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가장 완벽한 조직이라도 몇몇 국가들이 가장 완벽한 조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류를 위해 활용하지 못하고 오로지 야만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현실을 우리는 보아 왔다. (21쪽)

브라질에서는 시간보다 삶 자체가 더 중요하다. (181쪽)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헬'이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태초부터 그랬던 것 같은, 그리고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이 시대는 실은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츠바이크의 브라질과 현재 브라질 사이의 간극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헬'이 영원한 게 아니라는 희망을 주고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츠바이크를 읽으며, 나는 절망의 시대에 미래를 보는 이를 응원한다. 약자의 입장에서 혐오에 저항하는 이를 응원한다. 무언가를 바꾸려 행동한다는 그 이유로 급진주의자라 불리는 이를 응원한다. "올림픽이 끝났다"고 얘기들을 하지만, 여전히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페럴림픽에 참가 중인 선수들을 응원한다. 역사가 현실을 대변하는 보수적인 도구로만 사용된다면, 때로는 역사를 잊을 필요도 있다. 현재에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가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 이 글은 <서강학보>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