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고 있는 역사 상식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

2016-09-05     PyungSeok Koh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만 끊임없이 변한다. 시대정신을 담아 해석하기 때문에 같은 사실도 다르게 다가온다. 세부적으로 들어갈 경우 그렇다. 고려를 왕건이 세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호족들과 연합을 하여 세웠다는 것이 강조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조선을 이성계가 세웠지만, 사실은 정도전과 함께 세운 것과 다름 없다는 이야기가 통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다음 이야기도 해석의 차이일 수는 있겠다. 확실한 것은 역사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었으나, 다르게 볼 수 있는 역사 속 이야기를 만나보도록 하자.

1. 조선 후기 서학은 평등사상을 심어주었다?

“우리가 막연히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서학은 우리 사회에 평등사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서학에는 평등사상이 담겨 있지도 않았다. 교과서에서는 서학과 평등사상을 유관한 것으로 가르치지만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다. 서학 즉 천주교는 서양의 역사에서 마지막까지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에 저항한 세력이다. 17~18세기의 서양사에서 천주교의 역할은 ‘반동’이었다. 가톨릭교회가 시민사회의 가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였고, 특히 사회정의의 문제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20세기의 일이었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그들이 관심을 갖게 된 문제들은 유독 한국에서만은 18세기부터 그랬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책 ‘역설’, 백승종 저)

2. 정조는 신문물을 좋아했다?

“박자가 빨라지자 정조는 질색을 했다. 정통 성리학자를 자처한 왕에게 빠름은 곧 경박함이었다. 세상이 경박해져서 음악도 빨라졌다. 이것이 그의 확신이었다. …. 정조는 동시대의 중국에서 들어온 신문물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당시의 신문물을 셋으로 분류했다. 소품과 기서 등 중국의 문학과 역사책이 하나요, 서양의 역학과 수학책 그리고 중국산 명품 즉 사치품들이었다. 정조는 이 모두를 단호히 배척했다.” (책 ‘역설’, 백승종 저)

3. 김홍도는 백성 편에서 그들을 정확히 묘사한 화가였다?

“정조는 여러 면에서 탁월한 군주였다. 그러나 정조는 새로운 문화와 혁신적 사고를 근본에서부터 봉쇄했다. 화단에서 그런 정조의 우익을 담당한 이가 바로 단원(김홍도)이었다. 김홍도는 왕실 기록화를 도맡았고, 국가적 편찬사업에도 화보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한마디로 말해, 그의 이름은 친체제 화가의 대명사였다. …. 그의 풍속화에서도 체제 선전용 화보 냄새가 물씬하다.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조선 사람들은 모두 유쾌하며, 유난히 살집도 좋다. 마치 근대국가의 선전용 포스터에서처럼 김홍도가 그린 조선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단원과 정조의 정치적 밀월관계였다.” (책 ‘역설’, 백승종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