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촬영', '남성이라면 그럴수도 있는' 게 절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성폭력을 위계적으로 나눠 '강간'은 큰 죄, '도촬'은 '남성이라면 예쁜 여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문제'쯤으로 여기고 있다

2016-09-01     한국성폭력상담소
ⓒGettyImagesbank

한국성폭력상담소 25주년 기념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공동기획 | 우리가 성폭력에 대해 알아야 할 8가지

글 |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중화장실. 느닷없이 옆 칸에서 찰칵 소리가 들린다. 위를 쳐다보니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 사생활이 보호될 것이라 기대했던 공공장소가 나의 의사에 반하는 촬영의 공간으로 둔갑한다.

기존 휴대전화 기기에 설치된 카메라는 촬영 시에 반드시 촬영음이 나도록 되어있지만, 음소거가 가능한 카메라어플이 나오면서 누가 나를 찍고 있는지 더는 알지 못한다. 뿐만 아니다. USB크기의 캠코더부터 액자 캠코더, 자동차 키 캠코더, 탁상시계 캠코더, 벽 스위치형 캠코더까지 초소형 크기의 촬영기기가 즐비하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초소형 크기의 촬영기기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고, 설치하여 이른바 '도촬'을 할 수 있다.

'도촬'행위는 성폭력이다.  

경찰청 범죄통계(2014년)에 따르면, 2010년 1,134건이던 카메라이용촬영죄 신고율이 2014년에는 6,623건으로 지난 5년간 6배 정도 증가하였다. 하지만 기소율은 32.1%에 불과해 제대로 된 처벌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12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남인순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940건 가운데 69.7%가 기소됐는데 해마다 기소율이 낮아져 2013년 54.5%, 2014년 44.8%, 2015년 7월 32.1%로 3년간 절반 이상 떨어졌다. 이는 카메라이용촬영죄를 다른 성폭력 범죄에 비교하여 다소 가벼운 피해라고 여기는 사회문화적 태도와 판단기준이 일정치 못한 법적용으로 인한 처벌상의 공백, 여성의 경험과 언어를 반영하지 못하는 법 현실이 다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도, 법으로 하면 되...지?!  

7개월간 49번이나 촬영하고도 노출이 거의 없고 성적인 부위를 부각시키지 않은 사진이라는 이유의 무죄 판결과 짧은 바지와 치마를 입고 앉아있는 여성들을 12차례나 찍은 혐의에 대해 '예쁜 여자'를 촬영한 것으로 이해된다며 무죄를 선고한 판결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촬영하고 있음을 알게 된 순간 느끼는 모멸감과 분노, 그리고 피해 이후에 길을 걷다가도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촬영물이 한번 유포된 이후에는 정도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피해가 확산된다는 측면에서 '도촬'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치부할 수 없는 심각한 인권침해이다.  

'도촬' 피해는 결코 가볍거나 사소하지 않다.

지난 8월 9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개정안'에는 카메라이용촬영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 성범죄자 신상정보에서 등록에 제외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문제는 카메라이용촬영죄로 기소된 가해자 중 1심에서 벌금형을 받는 비율이 68%에 달한다는 점이다. '도촬'을 하고도 기소되는 사람은 10명 중 3명, 그 중 1심에서 벌금형을 받는 사람은 10명 중 7명에 불과하다.

* [우리가 성폭력에 대해 알아야 할 8가지] 연재의 다른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블로그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