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가루주스를 아시나요?

무엇보다 여성지는 가정과 가사를 크게 다루었다. 금기시되는 성생활 지식을 흡수하는 창구도 여성지였고, 아이들 옷을 지어 입히거나 새로 나온 취사도구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곳도 여성지였다. 국내 자본이 성장하면서 텔레비전과 냉장고 등 대량생산 상품이 여성지를 통해 광고를 쏟아부었다. 요즘 여성지에 명품 광고를 집중적으로 집행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부엌은 여성지의 황금시대와 겹치면서 대혁명을 맞았다.

2016-08-26     박찬일

, 당시엔 드문 순 한글로 편집되었다. 6·25전쟁 후 '우물가'로 상징되던 마을의 '뉴스 생산' 무대가 도시화로 해체되는 시점에서 여성지가 발행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에게 새로운 뉴스 공급자가 필요해지는 시기였다. <여원>, <주부생활>, <여성중앙> 등의 잡지가 속속 창간되었고, 인기도 엄청났다. 교양과 시사, 가정생활과 가사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는 건 거의 전적으로 여성지였다. 70년대 핵가족시대의 개막으로 이런 경향은 더 두드러져 발매부수가 크게 늘었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살림의 지혜'를 제공하는 선두에 여성지가 있었다.

1960년대 창간한 <주부생활>.

무엇보다 여성지는 가정과 가사를 크게 다루었다. 금기시되는 성생활 지식을 흡수하는 창구도 여성지였고, 아이들 옷을 지어 입히거나 새로 나온 취사도구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곳도 여성지였다. 국내 자본이 성장하면서 텔레비전과 냉장고 등 대량생산 상품이 여성지를 통해 광고를 쏟아부었다. 요즘 여성지에 명품 광고를 집중적으로 집행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1970~80년대 여성지에 등장한 주방시설 광고.

유제품과 식육가공제품의 광고도 주목할 만하다. 축산 장려 정책으로 우유 생산이 늘면서 학교에서도 우유 급식이 이루어졌던 70년대, 다양한 유제품이 여성지 광고 지면을 장식했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텔레비전 중계까지 따내면서 '우유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요즘의 시각으로는 '소아 비만'이라는 걱정을 자아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햄과 소시지 보급도 여성지가 주요 매개로 기능했다. 그 재료를 고르는 건 주부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광고 카피는 '아이들 영양 간식과 도시락 반찬, 아빠의 술안주'였다. 나중에 스팸의 대활약으로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식단을 바꾸어놓은 것도 여성지였다.

티브이 중계까지 했던 '우량아 선발대회' 광고.

에서 고부간으로 현모양처 이미지를 구축한 두 사람은 드라마의 이미지가 광고 캐릭터로 팔릴 수 있는 길을 연 초기 모델이었던 셈이다.

코미디언 구봉서를 내세운 미풍 광고. 박찬일 제공

제일제당의 조미료 광고 모델이던 배우 김혜자.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