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훼스의 창

며칠을 망설이다가 고백했다. 나는 니가 좋다고. 그 아이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 신발 끝만을 보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콩닥콩닥. 몇 시간이 흐른 것마냥 긴 기다림 끝에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니가 좋아. 그런데 덧붙이는 한마디. 나 일주일 있으면 호주로 이민 가. 어쩌지? 이제 막 첫사랑을 시작한 소년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일주일이라니!

2016-08-25     김조광수

난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뒷산에 자주 갔다. 가끔씩 몰래 담배를 피우던 고등학교 형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주로 나 혼자였다. 뒷산으로 난 오솔길도 꽤 예뻤던 걸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체육관 뒤쪽에 난 작은 창이었다. 운동기구 같은 걸 넣어놓았음직한 작은 방에 달린 창이었는데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예뻤다. 그 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 방은 굳게 잠겨 있어서 한 번도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갖지 못했기 때문에 더 좋아했을 수도.......

중학교 삼 학년 5월쯤이었다. 하늘이 유난히 파랬다.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하는 그 뒷산에 올라 작은 창을 바라보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창이 열리며 한 아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해성이었다. 아! 저 아이가 어떻게! 해성이는 우리 반 아이였다. 그는 나보다 더 피부가 하얗고 손가락도 훨씬 길고 눈도 더 까만 아이였다. 게다가 그 아이의 이름은 바다 해, 별 성. Sea Star, 바다의 별. 광수라는 이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름을 가진 그런 아이. 그날 해성이는 순정만화에서 똑 떨어져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 맘에 쏘옥 들어왔다. 얼굴을 내민 해성이도 창을 바라보던 나도 누굴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둘은 잠깐 놀랐고 한참을 마주 보았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고백했다. 나는 니가 좋다고. 그 아이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 신발 끝만을 보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콩닥콩닥. 몇 시간이 흐른 것마냥 긴 기다림 끝에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니가 좋아. 그런데 덧붙이는 한마디. 나 일주일 있으면 호주로 이민 가.

그리고 일주일. 등하교를 같이 했고 점심도 같이 먹었다. 우리 집에서 삼 일, 해성이의 집에서 삼 일을 같이 보냈다. 해성이가 한국을 떠나는 날, 난 공항에 가지 못했다. 엄마에게 떼를 썼지만 엄마는 내게 학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는 공항까지 가는 버스가 없었다. 어린 내가 공항에 갈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아침부터 전화통을 붙들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해성이가 떠나고 체육관 예쁜 창을 자주 찾았다. 그 아이는 여전히 그 방에 있었다. 이미지도 소리도 체취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아이는 희미해져갔고 내가 그 방을 찾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학교를 졸업하면서는 마침내 이별했다.

그 이후로 해성이를 만나지 못했다. 소식도 전혀 듣지 못했다. 호주로 이민을 가서 잘 살고 있는지,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한때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이름의 친구 찾기 사이트가 유행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해성이의 소식을 찾아봤지만 우리는 연결되지 않았다.

아주 가끔씩 그의 까만 눈이 생각나면 혼자 슬며시 웃음 짓는다.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된 그는 여전히 눈이 까맣고 예쁠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에 그는 열다섯이다. 그가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 이 글은 <광수와 화니 이야기>(김조광수 김승환 저, 시대의창)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