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시반의 특이한 사례: 게이 팝 스타가 필요한 이유

2016-08-23     김도훈

벨로 맥에 ‘트로이 시반의 필연적 부상’이라는 글을 썼다. 팝계의 대담하고 신선한 신인을 칭찬하며 그가 주류에서 인기를 얻을 운명이라고 예측하는 글이었다.

이 앨범 발표 전 트로이는 2014년에 EP ‘TRXYE’를 , ‘Blue Neighborhood’라는 뮤직 비디오 3부작을 발표했다. ‘WILD’, ‘FOOLS’, ‘TALK ME DOWN’ 세 곡이었다. 아름다운 세 뮤직 비디오는 어린 시절의 우정이 금지된 비극의 로맨스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소년이 소년을 만나는 이러한 대서사시는 팝의 세계에서는 드물다. 미국에서 나오기엔 너무 대담한 것일 수도 있다.

올해 트로이는 주류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아티스트에겐 적절한 매체 출연 분량을 얻었다. 엘렌더 투나잇 쇼에도 등장했다. 역동적이고 시적인, 스냅챗 세대를 위한 주제가인 공식 데뷔 싱글 ‘Youth’로 일부 라디오에서 톱 40에 들어가기도 했다.

‘Youth’의 공식 뮤직 비디오가 나왔는데 조금 다른 느낌이 전해졌다. 젊은이들이 바보 같은 짓을 하며(케어 베어 무더기 속에서 포옹을 한다!) 노는, 크리스마스 조명을 켠 집에서 열린 파티가 배경이다. 영상은 단순하고 괜찮다. 쓸 만하다. 그러나 일부 행동들, 특히 조심스러운 편집은 안전하게 느껴진다. 비디오 내내 트로이는 금발 소년과 유혹하는 시선을 교환한다. 둘이 얼굴을 맞대고 이들이 과연 할까 안 할까 하고 시청자들을 애태우는 장면도 잠깐 나온다. 그늘진 복도에서 키스하는 양성적 외모의 커플처럼, 파티의 다른 사람들은 스킨십을 하는데 트로이와 금발 소년은 키스를 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함께 다른 방으로 들어가며 끝나기는 하지만 말이다(아마 화면에 나오지 않는 사적인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인가보다).

그게 의심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다음 사실을 고려해 보라.

누군가가(어쩌면 레이블?) 다른 신인 알레시아 카라의 노래를 추가해 앨범 버전을 재작업하기로 했다. 그 결과 곡의 원래 메시지를 완전히 바꿔 버리는 메기고 받는 식의 리믹스가 나왔다. 여성 보컬과 새 가사, 추가 비트가 들어가자, 이 곡은 더 이상 다른 소년에 대한 욕구를 표현하는 소년의 노래가 아니게 되었다. 카라는 훌륭한 아티스트이지만, 이 새 버전은 뻔하고 이성애적인 사랑 노래다.

7월에 나온 새로 바뀐 싱글의 비디오를 보았다면(아래에 있다) 비주얼이 원곡의 메시지를 반영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관계에 적용됨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카라는 함께 옥상에 앉아 각자 자신이 남자 사귄 이야기를 하는 가까운 친구로 보인다. 비디오의 나머지는 다양한 커플들을 보여주는 기분 좋은 내용이다. 비싼 옷이(혹은 예산이) 없는 베네통 광고 같다.

트로이에 대해 잘 모르고 이 노래들을 듣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가 여성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생각할 것이다(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로이를 아는 사람, 그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아는(유튜브 채널 덕분에) 사람들은 다른 상정을 한다. 그가 노래하는 ‘당신’이 언제나 다른 남성이라는 걸 알고 있다.

만약 닉 조나스가 샤이 밋첼과 함께 옷을 벗고 샤워에 들어갈 수 있다면(화끈한 사례: ‘Under You’) 왜 트로이가 PG 등급 발라드에서 자신의 이상형인 남성과 스킨십을 할 수 없는가>

팝 음악, 특히 톱 40 라디오에는 트로이 시반처럼 뻔뻔하고 공개적인 게이 아티스트가 필요하다. 게이 가수가 감정을 한껏 담아 노래하는 것을 듣는 것은 게이 청중에겐 완전히 다른 음악 감상 경험이다. 그들만이 가사 안의 맥락에 진정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이티 페리가 어느 남성이 자신의 ‘Teenage Dream’이라고 노래하는 걸 듣는 것도 즐겁고, 닉 조나스가 자기 여자친구의 섹스 어필에 ‘Jealous’하다는 걸 듣는 것도 좋지만, 게이임을 공개한 가수가 마이크를 잡으면 특정 팬들에겐 더욱 큰 공명을 갖고 공감도 된다. 노래 안의 맥락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

인디 가수 스티브 그랜드는 커밍아웃한 싱어-송라이터로, 몇 년 전 온라인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SNL에 나올 정도의 히트는 하지 못했다. 왜 그럴까? 그랜드의 음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싱글 ‘All American Boy‘가 나왔던 2013년에 그를 ‘최초의 공개적 게이 컨트리 가수’로 포장하려 했던 공허한 시도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음악은 그의 이미지와 섹스 어필에 밀려나고 있다(그는 근육질 몸 사진을 거침없이 소셜 미디어에 올린다). 물론 섹스 어필은 팝 스타의 커리어의 일부분이지만, 이성애자 남녀는 몸을 드러내도 비교적 별 일이 없는 반면 게이 남성들(특히 백인)이 몸을 드러낼 때는 적용되는 이중잣대에 대한 온라인 논쟁의 한가운데에 그랜드가 휘말려 버린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주장으로 인해 그는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 백인 남성 특권의 모델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주장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아이구, 불쌍한 것. 사람들이 네가 섹시하다고 싫어해서 정말 고생하는구나.

TV에서 대표되는 게이 캐릭터들처럼, 게이 아티스트들이 라디오에 나오는 것은 이 세상에 더 많은 관용과 이해를 가져오는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스티브 그랜드 같은 사람보다는 보다 영리하게 큰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있는 재능있는 젊은 아티스트 트로이 시반 같은 사람이 팝 라디오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벌써 관객들을 홀리고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다. 상체가 아니라 굉장히 아름다운 가사를 쓸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해서다.

“난 여기에 진절머리가 나, 사람들이 바뀌었으면 좋겠어…”

트로이 시반, ‘FOOLS’

허핑턴포스트US의 The Curious Case of Troye Sivan: Why Top 40 Needs a Gay Pop Star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