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선 출퇴근길의 비애

출퇴근에 지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하나같이 다 젊은 부모들이에요. 20대나 독신자는 굳이 일산이나 김포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가지 않아요. 회사에서 가까운 오피스텔이나 학군이 좋지 않은 동네의 저렴한 빌라에서 살면 되거든요. 우리의 삶이 힘들어지는 건, 부모가 되는 순간입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거, 굳이 책이 아니라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요. 젊은 세대가 임신 출산 육아를 포기하는 건 그들이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2016-08-24     김민식
ⓒ연합뉴스

차라리 책이라도 편하게 읽자는 생각에 버스로 가양역까지 가서 9호선 전철을 탔습니다. 가양역은 종점 근처라 앉을 자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오전 8시 9호선 급행은 지옥철입니다. 앉을 자리는커녕 사람이 너무 많아 서서 가기도 힘듭니다. 중간에 앉을 자리가 나지도 않아요. 가양역에서 타면 신논현까지 쭉 서서 갑니다. 가양역부터 꽉 찬 9호선 전철을 보며, '아, 세상 사는 게 왜 이리 힘들까', 싶습니다.

환승역 맞은 편 승강장에서 기다리는 일반열차를 보면 텅텅 비어 있어요. 그런데도 다들 기를 쓰고 그 복잡한 급행에 오릅니다. 한번 문이 열릴 때마다 여기저기서 밀리고 쓰러지는 이들의 비명이 속출합니다. 보통 열차는 비어서 가고, 급행은 미어 터지고. 가양역에서 신논현역까지 급행과 일반의 시차는 겨우 13분입니다. 출근 시간 13분을 당기려고 급행에 밀고 들어오는 이들을 보며 '아, 다들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나...' 싶습니다.

하버드 법대 파산법 교수 엘리자베스 워런이 연구를 해보니, 가구 파산을 신청하는 맞벌이 중산층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1981년 파산을 신청한 미국 여성의 수는 약 6만 9000명이었어요. 그런데 1999년에는 그 수자가 50만 명으로 급증합니다. 처음엔 입력하는 사람이 실수로 0을 두 개 더 붙인 줄 알았대요. 조사해보니, 파산신청을 한 여성의 수가 실제로 662% 늘어났답니다. 이혼 등으로 혼자 사는 여성만 곤경에 처한 게 아니라 수십만 명의 기혼 여성들도 남편과 함께 파산을 신청했어요.

몇 가지 사실들을 검토해 보자. 우리의 연구는 유자녀 기혼 부부가 무자녀 기혼 부부보다 두 배 이상 파산신청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아이를 키우는 이혼 여성은 자녀를 가진 적이 없는 독신 여성보다 거의 세 배나 더 파산신청하기 쉽다.'

(위의 책 16쪽)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는 집의 경우, 더 좋은 학군, 더 안전한 동네로 이사하려는 경쟁에 불이 붙어 집값이 몇 배나 뛰었어요. 맞벌이를 하니 아이를 돌보기 어려워지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빚을 내서라도 좋은 학군이 있는 동네로 이사갑니다.

장거리 출퇴근에 지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하나같이 다 젊은 부모들이에요. 20대나 독신자는 굳이 일산이나 김포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가지 않아요. 회사에서 가까운 오피스텔이나 학군이 좋지 않은 동네의 저렴한 빌라에서 살면 되거든요. 우리의 삶이 힘들어지는 건, 부모가 되는 순간입니다.

어른들은 더 좋은 학군을 놓고 경쟁하고, 아이들은 더 좋은 학교를 놓고 경쟁합니다. 경쟁 속에는 답이 없어요. 우리의 삶이 갈수록 더 힘들어질 뿐이지요. 과연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걸까요?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