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상상하는 포르노가 제일 야하다

신체적인 자극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진짜 쾌락은 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뇌에서 상상하고 스스로 욕망을 이루어내는 것.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설은 느리지만 서서히 밀려드는 거대한 해일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야설 이상으로 『크래시』, 『데미지』 같은 소설에서 묘한 흥분 같은 것을 느꼈다. 한 남자가 어떻게 한 여자에게 완벽하게 빠져들어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가. 무생물에게 욕망을 느끼고, 죽음의 과정과도 같은 섹스를 통해서 어떻게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가.

2016-08-19     김봉석
ⓒGettyimage/이매진스

흔히 일본 소설은 이상한, 변태적인 것을 많이 다룬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비하면 그렇기도 하다. 한국보다 훨씬 인구가 많으니 다양한 것을 욕망하거나 즐기는 사람도 많고,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비주류 문화도 자생할 수 있으니 이상한 것들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경로다. 하지만 아무리 이상한 것일지라도 막상 읽다 보면 결국은 다 인간의 문제일 뿐이다. 조금은 사소하고, 조금은 대단한 섹스. 상황과 주체에 따라 현저하게 달라지는 섹스와 인간의 위상.

성을 다룬 소설은 문장을 읽으면서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남자의 성적 욕망은 시각에 의해 상당 부분 충족된다고는 하지만 다른 관점도 있다. 신체적인 자극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진짜 쾌락은 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뇌에서 상상하고 스스로 욕망을 이루어내는 것.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설은 느리지만 서서히 밀려드는 거대한 해일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야설 이상으로 『크래시』, 『데미지』 같은 소설에서 묘한 흥분 같은 것을 느꼈다. 한 남자가 어떻게 한 여자에게 완벽하게 빠져들어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가. 무생물에게 욕망을 느끼고, 죽음의 과정과도 같은 섹스를 통해서 어떻게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가.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내 안의 음란마귀>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