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극복할 여성들의 정치가 필요하다

군가산점 위헌 판결 때부터 메갈리아 논란에 이르기까지 한국 남성들이 진짜 적이 아니라 엉뚱하게 여성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크다. 설령 메갈리아가 문제 있는 집단이라 하더라도, 후원 티셔츠 구매 인증에 대해 벌어진 공격은 부당하다.

2016-08-18     김명환
ⓒ연합뉴스

소모적이고 극단적인 갈등의 이면

군가산점 위헌 판결 때부터 메갈리아 논란에 이르기까지 한국 남성들이 진짜 적이 아니라 엉뚱하게 여성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크다. 설령 메갈리아가 문제 있는 집단이라 하더라도, 후원 티셔츠 구매 인증에 대해 벌어진 공격은 부당하다. 또 논란이 된 성우를 지지한 일부 웹툰 작가들과 충돌한 끝에 웹툰 검열에 찬성하자는 반응을 보인 이들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메갈리아는 '여자 일베'가 아니다. 그러나 미러링을 통해 뜻하지 않게 일베와 비슷해지지 않았는지 성찰할 필요는 있다. 김학준은 실증적 연구에서 대면조사가 가능했던 일베 이용자들이 자신이 당한 고통(왕따, 가난 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포기하고 "겪을 건 다 겪어봤다", 혹은 "누구나 그 정도의 고통은 겪는다"는 '평범 내러티브'를 내면화한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의 저항에 대해 이 '평범 내러티브'를 근거로 삼아 왜 너희만 떼를 쓰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사회적 연대와 거리가 먼 '냉소'가 그들의 행위 밑에 깔린 지배적 감정이라는 것이다(김학준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학위논문 2014). 일베가 체제 순응을 내면화하면서 동시에 지배자와 가진 자의 논리를 '열광적으로' 대변하는 배경에는 이처럼 뒤틀린 사고와 정서가 있다.

성차별사회를 극복할 정치로

기성 정치의 표류는 성평등을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이다. 최근 정권들의 퇴행이 겹쳐져 더욱 악화된 성차별은 젊은 남녀들을 서로 낯설다 못해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다. 그러나 낯선 존재의 만남은 새로운 삶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 세상은 양성(兩性)만으로 구성되지 않았지만, 미지의 젊은 여성과 남성의 만남은 새로운 가능성의 출발이다. 그런 시작을 자연스럽고 평등하게 만들 정치를 갈구해야 한다. 온라인을 뒤덮은 증오와 혐오의 비상한 열기에서 내년 대선이 우리 역사의 큰 고비임을 잊는 정치허무주의의 냉소를 감지하는 것이 그저 엉뚱한 반응일까. 문제는 정치이다. 그래서 메갈리아의 기치 아래 모였던 여성들이 '강남역 추모' 등에서 거둔 만만찮은 정치적 성과를 어떻게 진전시킬지가 기대된다.

순식간에 살벌해지는 가상공간의 특성을 생각할 때,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동시에 메갈리아에 분노한 남성의 잘못을 꼬집는 일은 긁어 부스럼 꼴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젊은 남성의 감정을 예민하게 자극할 군가산점제까지 들먹인 것은 내가 물정을 몰라서는 아니다. 대화와 상호존중이 막힌 극단적인 형세에서는 정치의 기적이 불가능하다. 그럴수록 민감한 쟁점을 회피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대결하며 정치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문제는 정치이다.

자기 일에 정신이 팔려 이들의 싸움에 무심하던 평범한 남성으로서 나는 수많은 여성들이 눈앞에서 뿜어내던 에너지 앞에 새로 눈을 뜨는 기분이었다. 한해 전인 1991년에 (최근에야 무죄로 판명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상징하는 공안정국과, 이어진 민주화운동의 분열과 침체 앞에서 내심 실망뿐이던 나에게 이들은 희망의 살아 있는 증거였다. 말없이 그들 옆을 지나가면서, 당신들 덕에 어린 내 아이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에 살게 될 것을 믿는다, 감사하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믿음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내 믿음은 여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청년층의 열악하기 짝이 없는 현실과 얽히고설킨 성차별의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기 어렵지만, 당장 다음 학기 강의 내용에서부터 학내 성차별에 대한 대처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야무지게 챙겨야겠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