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짐 |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한국문학

증언되고 재현되지 못한 역사의 시간이 있는 한 그 연속의 계기는 끝없이 상상되고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허니 바케쓰'(honey bucket, 수용소에서 똥통을 부르던 말)에 수시로 사람들의 잘린 팔, 다리, 머리가 담겨 버려진 역사의 시간이 남아 있는 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존자의 다음과 같은 질문 역시 계속될 필요가 있다. "지금도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우리가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과연 우리는 그 행동을 책임져야 하는가."

2016-08-18     정홍수

최근에 발굴된 자료[김수영 「시인이 겪은 포로 생활」(『해군』 1953년 6월호), 「나는 이렇게 석방되었다」(『희망』 1953년 8월호); 이영준 「전쟁과 시인의 진실」(『세계의문학』 2009년 겨울호), 박태일 「김수영과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근대서지』 2010년 제2호)]에 따르면, 김수영의 경우 미군에 의해 '민간 억류자'(civilian internee, 남한 거주자가 북한군의 강압에 의해 의용군으로 끌려간 경우)로 분류되었으며, 수용소 생활도 대부분 부산 거제리(지금의 부산 거제동) 포로수용소(거제리 14 야전병원)에서 보낸 것으로 확인된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것과는 달리 거제도 포로수용소에는 잠시 이송되어 가 있었던 게 아닌가 추정된다.

'자유'의 이름으로

소설가 김소진의 등단작 「쥐잡기」(1991)에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출신의 무력한 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생전의 아버지가 화자인 아들 민홍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부친은 수용소에서 길들이던 흰쥐 한마리 덕분에 우연히 수용소 폭동 때 목숨을 부지한다. 포로 석방 절차가 진행되면서 남북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흰쥐는 부친이 남쪽에 남게 된 결정적 빌미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수용소 복도를 사이에 두고 남북을 오락가락하던 부친의 눈에 꼬랑지를 살랑살랑 흔들며 이남 쪽으로 걸음을 떼고 있던 흰쥐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전쟁 전에 결혼해서 북에 이미 처자까지 두고 있던 아버지였다.

-「쥐잡기」,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문학동네 2002, 29면

역사의 시간과 문학의 상상

이미지 출처 : 한겨레21

증언되고 재현되지 못한 역사의 시간이 있는 한 그 연속의 계기는 끝없이 상상되고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허니 바케쓰'(honey bucket, 수용소에서 똥통을 부르던 말)에 수시로 사람들의 잘린 팔, 다리, 머리가 담겨 버려진 역사의 시간이 남아 있는 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존자의 다음과 같은 질문 역시 계속될 필요가 있다. "지금도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우리가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과연 우리는 그 행동을 책임져야 하는가."(153면) 강요된 스퀘어댄스를 추면서 신분 노출과 보복을 두려워한 가면 쓰기였을 테지만, 그 죽음 같은 가면의 춤을 '탈춤의 춤사위'로 바꾸어내는 상상이 거듭 긴요하고 절실한 것처럼 말이다. 한때 우리가 오해했듯 역사는 확정된 진리의 자리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문학의 질문과 상상은 여기서 계속되어야 한다. 무거움을 타매하는 게 유행이 된 시대에, 역사의 짐 속으로 기꺼이 걸어가는 작가의 도정이 특별한 감동을 준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