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관들에게 자연 다큐멘터리를 틀어주자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한 광고를 본 남성은 다른 집단의 남성들에 비해 여성 구직자들에게 더 바싹 다가앉았고, 더 많이 치근덕거렸으며, 성적으로 부적절한 질문을 훨씬 더 많이 던졌다. 성이 점화된 남성들은 여성의 신체적 외모는 많이 기억했지만, 업무 적합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별로 기억하지 못했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건, 나중에 여성 구직자들의 능력을 판단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이들 남성 면접관들은 '여성 구직자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업무 적합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16-08-19     정재승
ⓒGettyimage/이매진스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성 고정관념

종종 받는 질문이다. 거의 40% 가까이 된다고 하면 놀라면서 여지없이 물어보는 다음 질문. "전공 수업을 잘 따라가긴 하나요?"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학교 총장은 "여성이 수학이나 물리학 등 기초과학을 못하는 이유는 유전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해서 총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현실은 그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여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남학생을 따라잡은 지 오래다.

'어머니' '누나' 대 '베이브' '빔보'

미국의 어느 대학 캠퍼스. 남녀 학생 한 무리가 교실로 들어가자, 실험자가 실험에 관해 간단히 설명한다. "이 실험은 남녀들 간에 수학적 능력에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30분입니다. 앞에 놓인 수학 문제들을 모두 최선을 다해 풀어주세요."

우리의 뇌는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 있다. 여성은 모성적이고, 흑인 남성은 공격적이며, 유대인은 지갑을 절대 열지 않을 거라는 성적·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아줌마는 억척스럽고, 아저씨는 뻔뻔하며, 요즘 애들은 버릇없고, 나이든 노인은 성욕을 잘 다스린다고 우리는 굳게 믿는다. 직업에 대한 편견도 만만찮다. 예술가는 섬세하고, 정치가는 권모술수가 능하며, 교수는 논리적으로 따지고, 사업가는 통이 크다는 선입견을 품고 있다. 평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여지없이 우리의 뇌에서 이런 고정관념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정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의지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종종 있다. 연약한 아줌마, 정중한 아저씨, 예의바른 청소년, 성적 욕구가 강한 노인, 정직한 정치가, 대범한 교수, 섬세한 사업가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쉽게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다.

실제로 광고가 고상한 현대 남성들에게 끼친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준 실험이 있다. 두 집단의 남성에게 텔레비전 광고를 보여준다. 한 집단에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그린 성차별적인 광고를 보여주고, 다른 집단에는 성적인 표현이 전혀 없는 광고를 보여준다. 그런 후에 피험자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련의 문자열이 무슨 단어인지 판단하는 과제다. 흥미롭게도, 성차별적인 광고를 본 남성들은 다른 집단의 남성들과는 달리, '어머니' '누나'처럼 모욕적이지 않은 단어보다 '베이브'(babe), '빔보'(bimbo, 아름답지만 우둔한 여자) 같은 성차별적인 단어를 더 빨리 알아채렸다. 즉 광고가 여성이라는 스키마를 '성적인 대상'으로 점화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0.2초 만에 매력 있나 없나 판단

성차별적인 광고는 여성 구직자에 대한 남성들의 기억과 자격평가능력 또한 편향되도록 만들었다. 성이 점화된 남성들은 여성의 신체적 외모는 많이 기억했지만, 업무 적합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별로 기억하지 못했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건, 나중에 여성 구직자들의 능력을 판단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이들 남성 면접관들은 '여성 구직자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업무 적합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은 좀 더 착하거나 능력이 뛰어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매력적인 외모의 사람들이 승진도 더 빨리 하고, 회사에서 인정도 더 쉽게 받으며, 재판을 받더라도 형량이 적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치원 아이들도 예쁜 선생님의 말을 더 잘 듣는다니 말 다 했지!

정글에서 생활하는 원시인들에겐 유익했을, 이 빠른 판단 능력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종종 잘못된 판단을 야기한다. 기업 채용 때 면접관의 뇌에선 모든 이성 구직자를 바라볼 때 이 회로가 암묵적으로 작동하며, 유권자가 정치가를 뽑을 때, 학생이 선생님을 바라볼 때, 심지어 성직자가 신도를 대할 때도 이 회로는 여지없이 작동한다.

"아버지 뭐 하시노?" 묻는 내밀한 욕망

그래서 면접관은 암암리에 직무와 상관없이 매력적인 사람들을 뽑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고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교수는 이런 이유로 학생을 뽑는 건 아닌지, 성직자는 이런 이유로 신도를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우리의 뇌가 갖는 원시적 고정관념을 재고할 수 있는 지성을 가져야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성직자와 신도의 관계가 제구실에 충실하게 된다.

의 그 선생님은 왜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우리 뇌는 고정관념이라는 편리한 판단기준을 사용해 사람을 미리 재단한다. 그의 성별, 인종, 출신 지역, 가정환경 등을 통해 쉽게 일반화한다. 그 안에는 우리의 내밀한 욕망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나 <오션 월드> 같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자. 그러면 그들이 매우 진지한 태도로 면접에 임할 것이다. 단, 물개가 교미하는 자연 다큐멘터리는 빼고 말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