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는 재소자를 인간으로 대하는 게 효과가 있다는 걸 증명했다

2016-08-08     Baz Dreisinger

2011년 4월 11일, 바스토이 교도소로 가는 페리

노르웨이 바스토이 섬 - "교도소?" 나는 기차를 타고 배까지 와서 갑판원 두 명에게 물었다.

돛대 위를 보니 박제된 백조가 달려 있었다.

"으스스한 모습인데요."

"정말이에요, 우린 범죄자들이에요. 무섭나요?"

"난 비고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정말로 재소자였다. 노르웨이의 최고형인 21년 형을 받고 수감 중이었지만 내년엔 출소할 가능성이 컸다.

"우리는 6시부터 정오까지 일해요. 그리고 교도소로 돌아가서 쉬거나 운동을 하죠. 이리 오세요, 선장님 만나 보고 싶어요? 선장은 죄수가 아니에요. 이 배에서 죄수가 아닌 유일한 사람이죠."

"이 범죄자들과 이야기했어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무서운 범죄자들'이라는 장난스러운 놀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기선 무서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모두가 그걸 아는 것 같았다.

"페이스북 하시나요?" 그가 물었다.

"저기선 못해요." 그는 소나무 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집에 다녀 올 때는 할 수 있죠." 나는 쪽지에 내 이름을 적어 주었다. 내가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머리 위에 가느다란 푸른 하늘의 선이 떴다.

바스토이 교도소에서 마차를 타고 있는 재소자. 2011년 4월 11일

"사람들은 바스토이를 여름 캠프라고 해요." 배에서 내리려고 선실을 나서는 내게 비고가 말했다. 그는 거의 나를 나무라다시피 하고 있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요. 하지만 저긴 교도소예요. 내 말 믿어요. 우리의 삶은 멈췄어요. 얼어붙었어요."

비고는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의 카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스토이는 개방형 교도소다. 개방형 교도소는 핀란드에서 1930년에 만들어진 개념이며, 이제는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표준적이다. 재소자들이 복역 중에 매일 출근하며 외부 직업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노르웨이 교도소 30%는 개방형이고, 악명 높은 소년원이었다가 1982년에 교도소로 바뀐 바스토이는 대표적 개방형 교도소다.

마약 관련 범죄로 3년 이상의 형을 받은 에드벤(38세)이 바스토이 교도소의 목재 오두막 주방 앞에 서 있다. 2011년 4월 11일.

"그건 효과가 없어요. 그걸 유지하는 건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톰이 단호히 말했다. 그는 이 개방형 교도소 운영을 맡기 전에 22년간 근무했던 전통적인 교도소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톰이 말을 계속하는 가운데 창가에서 파리가 유란하게 붕붕거렸다.

"'아, 여긴 만만한 교도소구나. 괜찮은 죄수들을 골라서 여름 캠프 교도소에 넣는구나.'라고들 생각해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죄수들은 중범죄자들입니다. 마약, 폭력사범이에요. 그리고 다른 교도소에서 문제를 일으켰다가도 여기에 와서는 괜찮아진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는 '저 사람이 당신이 다루기 힘들다고 했던 죄수가 맞아?'라고 묻죠. 정말 간단한 일입니다. 사람을 쓰레기 취급하면 그들은 쓰레기가 됩니다. 인간처럼 대하면 인간처럼 행동해요."

"산책하러 가시죠."

"교도소가 아니라 섬을 운영하는 겁니다. 농사가 우리 철학의 큰 부분을 차지해요. 우리는 인도적이고 생태적이에요. 동물들도 사회적 기능을 합니다. 공감을 가르치죠. 모두 농사일을 합니다."

"이 섬에 사시나요?" 내가 물었다.

"매일 배로 출퇴근해요. 정말 좋습니다. 오슬로에서 운전하지 않아도 돼요."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도시 출신이거든요. 이 곳, 이런 라이프스타일 덕택에 내 삶이 정말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재소자들도 마찬가지죠."

살인과 마약 범죄로 16년 6개월 형을 받은 재소자가 바스토이 교도소의 집 앞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2011년 4월 11일

"두려울 게 뭐가 있죠? 인터넷이나 전화로는 아무도 죽일 수 없어요."

"노르웨이에선 출소했으면 출소한 겁니다. 큰 오명이 따르지 않아요. 내가 아는 사람 하나는 18년 동안 복역한 뒤 지금 내 이웃에 살아요. 평범한 노인이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요. 이런 경우는 흔합니다. 내 친구 중에는 전과자가 많아요. 노르웨이 사람들은 아주 너그럽습니다." 그는 말을 멈추었다. "묘해요. 우리가 늘 그렇지는 않았거든요."

바스토이 교도소의 낡은 공중전화 부스. 이 섬의 유산의 일부이며 재소자들이 외부에 전화를 걸 때 사용한다. 2011년 4월 11일

점심을 먹으며 톰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계속했다. 그는 노르웨이의 '보수'당은 다른 곳에서는 진보적으로 간주될 것이긴 하지만, 교정 정책, 최근 노르웨이의 진보적 시스템과 가벼운 형벌 접근을 위협하는 이민자 유입과 외국인 혐오의 증가와 보수적 정치에 대해 좌파와 우파가 전반적으로 동의한다고 설명했다. 보수가 이끄는 정부의 일부인 진보당은 이민에 반대하는데, '네이빙'에 대한 반발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네이빙은 복지에 기대 사는 것으로, NAV는 노르웨이 노동과 복지 행정부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한 지역 신문은 노르웨이 인 80%가 더 엄격한 처벌을 원한다고 주장했고, 2010년 설문 조사에 의하면 대다수가 처벌이 일반적으로 너무 관대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매체가 문제를 일으키고 또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 충격적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공포의 문화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에게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경험과 머독의 매체에 대해 말했다.

나는 독일의 연구에 따르면 교도소에서 잠시 나와서 집을 방문했다가 돌아오지 않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매년 이웃들을 내보낸다고 말합니다. 시한폭탄으로 만들어 내보내길 원합니까? 그런 사람이 옆집에 살면 좋겠어요? 이것 봐요." 그는 토스트를 내려놓았다. "뉴욕 주 아티카의 교도소장에 대한 영화 보셨나요?"

톰은 "당신, 당신의 삶, 당신의 아이들에 대해 공유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죄수들을 도울 수 있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내 아이, 내 주소, 모든 걸 알고 있어요. 내가 왜 두려워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살인 미수로 5년 6개월 형을 받은 비욘(54세)이 바스토이 교도소의 집 앞에 서 있다. 2011년 4월 12일

처벌은 자유의 제한 그 자체이며, 누구도 지역 사회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보다 더 엄격한 상황에서 복역해서는 안 된다는 '정상 상태의 원칙'을 도입한 노르웨이의 교도소 시스템만큼 노르웨이의 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수감자들의 지역 사회는 복역 기간에도 의료와 교육 등 사회 서비스를 담당한다. 그래서 노르웨이 식 수입 모델은 수감자들이 다른 시민들과 같은 복지 기구의 서비스를 받게 해준다. 이것을 끊임없는 복역이라고 한다. 복역 전과 후에 같은 지자체에 속하는 것이다. 형기도 짧아서 평균 8개월 정도이다. 2012년 미국의 평균 형기는 4년 6개월로 추정되었다. 형기를 다 채우는 사람은 거의 없고, 3분의 1을 복역하고 나면 가정 방문을 신청할 수 있고, 형기의 최대 절반까지를 교도소 밖에서 보낼 수 있다.

방문을 마치고 오슬로 행 배를 타는 곳까지 데려다 줄 노란 밴을 기다리고 있던 내게 앞니가 부러진 남성이 내 옆에 섰다.

"하지만 사람을 똥처럼 취급하면 똥이 돼요. 미국은 왜 그걸 모르죠? 이상해요. 토니 로빈스는 정말 똑똑한데 미국 사람이니까." 토니 로빈스는 해설식 광고와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등의 책을 쓴 자립 구루다. 그는 불안한 듯 한숨을 쉰다.

"저요? 여기 앉아 있죠. 다른 교도소로 옮겨야 할 수도 있어서 의사를 만나러 가요. 말 알레르기가 생기고 있어요."

그가 죄수라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는 사실이 내겐 아주 감동적이었다. 그와 나는 두 인간이었다. 갑판원 비고와 카토를 만났을 때처럼, 우리의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교류는 내가 여러 해 동안 했던 여러 교도소 인터뷰와는 큰 대조를 이루었다.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가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있어요. 교도소에서는 하늘을 보는 것과 땅의 이끼를 보는 것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죠. 난 하늘을 봐요."

'Incarceration Nations: A Journey to Justice in Prisons Around the World'에서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