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대의 네 가지 화법

오해하지 말자. 김영란법의 원칙은 "3만원 이하로 얻어먹으라"는 게 아니다. 더치페이를 하라는 거다. 2만9000원, 2만9900원짜리 음식 메뉴나 4만9000원짜리 선물 출시를 부각시키는 건 옳지 않다. 소비 위축론도 마찬가지다. 고급 한정식 집은 문 닫을지 모르지만 설렁탕 집, 김치찌개 집을 찾는 발길은 늘어날 것이다.

2016-08-03     권석천
ⓒ연합뉴스

그는 극단적인 우화일 뿐이다. 지금까지 검찰이 기업 압수수색을 할 때마다 법인카드 사용 장부에서 숱한 공무원, 기자들 실명이 튀어나오곤 했다. 9월 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 이후엔 수십 명, 수백 명씩 수사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밥자리의 헌법이 바뀌는 것이다. 말하는 습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1. "식사요? 생각 좀 해 볼게요."

김영란법은 공직자의 자유, 언론의 자유, 사학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게 아니다. 헌재 결정문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을 근절하고"(10쪽), "언론은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권력을 견제할 수 있게"(21쪽) 되며, "정당하고 떳떳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24쪽)고 제시한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직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아닌가.

2. "오늘 밥값은 각자 냅시다."

따지고 보면 밥값이나 선물 대금은 대개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동안 공직자와 기자들은 국민이 낸 세금, 주주·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을 나눠 쓴 것 아닐까. 정책활동, 취재, 홍보란 명분으로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값비싼 식사와 선물이 무서운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돈 있고 힘 있는 세력의 이데올로기에 젖어든다는 데 있다.

3. "2차요? 그만 집에 가시죠."

최악은 '지키면 바보가 되는 법' '걸리면 재수 없는 법'이 되는 것이다. 과속하다 경찰에 걸리면 억울하지만 단속카메라에 찍히면 내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게 인간이다. 검찰과 경찰은 표적수사의 미련을 버리고, 초기에는 수사력을 집중해 기계적으로, 엄격하게 단속해야 한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더 공고해질 학연·지연·혈연을 무력화할 대책도 나와야 한다.

4. "의식을 지배하는 건 위장이다."

나도 관행이란 이름에 젖어 있었음을 고백한다. "적극적으로 요구하진 않았다"는 건 변명이 될 수 없다. 못 이기는 척 편승해 온 게 더 비겁하다. 마지막 화법은 스스로를 향한 참회요, 경고다.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뇌가 아니라 위장이다. 식탁에 누구와 앉아 있느냐가 나를 규정짓는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