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人터뷰] '부산행'의 감독 연상호를 만나다

"보통 사람들에게서 악마성 같은 기질이 관성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관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후반부에서 느껴지는 처연함도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감정이라 생각했고. 방금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윽박을 지르는 보통 사람들이란 우리가 평소에 인간적이라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그런 순간이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들 입장에선 굉장히 슬프게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2016-08-01     민용준

연상호라는 이름을 부지런히 쫓아온 이들에게도, 연상호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한 이들에게도, <부산행>의 감독 연상호란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애니메이션 장르의 대가로 꼽히는 감독이자 사회파 작가로도 분류되는 연상호의 <부산행>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보기 드물게 대중적인 오락물이면서도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좀비를 위시한 한국형 장르물이자 한국사회를 정통으로 가로지르는 문제작이기도 하다. 그리고 개봉 첫 주말에 이미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으로 단숨에 내달린 시점에서 연상호 감독을 만났고, 그를 만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 800만 명의 관객이 <부산행>을 봤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첫 실사영화로, 어쩌면 올해 가장 뜨겁게 기억될지도 모를 작품을 만든 연상호 감독에게선 그 열기와는 거리가 있는 차분함이 느껴졌다.

처음으로 연출한 실사영화가 100억이 넘는 블록버스터 영화인데 개봉 첫 주에만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전작들을 꾸준히 봐온 입장에선 벼락부자를 보는 느낌이다. (웃음)

을 연출한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엔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에게 이런 대작을 맡겨도 되냐는 의견도 있었던 걸로 안다. 심지어 기존에 내 작품을 좋아했던 관계자 분들도 그런 얘기를 했다니까.

구체적으로 제안을 받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를 제작했는데 뉴의 장경익 대표가 <사이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사영화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00억대 예산의 영화를 맡길 수도 있다고. 그 당시엔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싶기도 했고, 솔직히 나름대로 애니메이션 작업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제안이 크게 당기진 않았다. 어쨌든 그때 워낙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정작 <부산행>에 들어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실사영화 연출 제안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나?

아무래도 애니메이션 연출과는 다른 일인데, 두렵진 않았나?

을 만들면서 느낀 건 역시 실사영화 제작 체계가 잘 잡혀있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보단 확실히 편했다. 프로들이 모여 있고, 분업화도 잘돼있고. 애니메이션은 산업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아서 주먹구구식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땐 혼자서 다양한 영역을 도맡아야 했던 걸로 안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스태프와 상의하며 협업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했을 텐데, 낯설진 않았을까?

KTX의 홍보효과가 상당할 것 같은데 코레일로부터 도움을 받진 않았나?

을 이 정도 예산으로 찍었다는 건 효율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비좁은 공간에서 2시간 여의 이야기를 끌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있었을 거 같다.

공간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편집의 리듬감도 중요했을 것 같다.

현장편집을 치열하게 가져간 이유는?

최종 편집은 편했겠다.

사실 이런 장르영화에선 다이내믹한 감상을 주기 위해 핸드헬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부산행>에선 핸드헬드가 거의 없더라.

에선 인물의 동선이나 공간감에 집중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핸드헬드를 쓰면 공간감이 깨진다고 느꼈다. 열차칸이란 게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물의 동선에 몰입하고 점진적인 긴장감이 조성되려면 그런 공간감이 무너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KTX 의자는 칸마다 절반씩 마주보는 구조라 의자의 방향만으론 머리칸으로 가는 건지, 꼬리칸으로 가는 건지, 동선이 명확하게 파악되질 않는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단순한 합을 맞춰서 정보를 명확히 주고자 했다. 편집의 컷 수도 최대한 줄이고.

사실 애니메이션에선 핸드헬드를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실사에서도 그런 특성이 이어진 것인가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할 수 있는 앵글에 비해 실사영화에서 포착할 수 있는 앵글이 제한적이라 느끼진 않았을까?

이전에 제작했던 애니메이션들은 콘티 단계에서 모두 3D로 모델링을 해서 앵글을 만들었다. 가상공간에 카메라를 두고 다양한 렌즈를 활용해서 앵글을 정한다. 카메라가 들어갈 수 없는 자리에선 벽을 무시하고 조금 넓게 빼는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거의 실사와 비슷했다. 그런 면에선 오히려 실사영화가 더 편했다. 그냥 바로 들어가면 되니까.

석우(공유)와 수안(김수안)을 제외한 캐릭터 대부분은 KTX에 탑승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사람인지, 거의 알 길이 없다.

은 '좀비가 탄 열차'라는 강력한 설정으로 끝까지 달려가는 영화였기에 캐릭터의 전사에 집착하는 순간 영화가 너무 늘어지고, 몰입도가 떨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설명이 필요 없는 전형적인 캐릭터들로 영화를 채웠고, 장르의 특성을 납득시키기 위한 작업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그래서 결국 액션 중심의 영화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돼지의 왕>과 <사이비>에서는 세계관보단 캐릭터를 납득시킬 필요성이 강했기 때문에 캐릭터에 할애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상화(마동석)의 정체는 정말 궁금하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애니메이션에선 작가가 완전히 캐릭터를 창조하지만 실사영화에서는 배우와의 소통을 통해 캐릭터를 조율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의 민철이가 양복을 입고 나타나서 '저는 민철 역할을 하는' 이럴 리는 없지 않나. (웃음) 그런데 영화에선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고, 그 배우를 어떤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합의다. 저 배우를 알지만 다른 캐릭터로 생각하겠다는 합의. 그래서 배우의 이미지를 그대로 끌어와 캐릭터에 응용하거나 정반대로 역전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도가 스토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마동석 선배 같은 경우가 그런 케이스다. 마동석이란 배우가 가진 본래의 이미지가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지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공유도, 안소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부산행> 시나리오는 기존에 써온 시나리오보단 배우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는 뉘앙스를 고려하며 썼다. 그런 면에서 영화 산업이나 영화 미학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석우와 용석(김의성)은 극 초반만 해도 이기적인 캐릭터로 그려지지만 끝내 다른 선택을 한다. 그런 면에서 두 캐릭터의 변화와 대립 자체가 일종의 메시지처럼 읽힌다.

<부산행>에서 가장 끔찍한 역할을 하는 건 결국 좀비보다 사람들이다. 좀비에게 고립된 일행을 구해 생존자들과 합류한 이들을 감염자로 몰고 윽박지르는 사람들로부터 약자의 치졸함 같은 것이 드러난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같은 작품과 일관성 있는 주제의식을 이어가는 신이기도 한데, 결국 가장 '연상호다운 장면'이기도 하다.

권총 얘기가 나왔는데 사실 용석 자체가 권총이다. 그가 장전하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니까. 그리고 그렇게 가혹하게 캐릭터를 죽일 수 있는 단호함이란 결국 감독의 의지일 테고. 결국 방아쇠를 당기는 건 감독 본인이란 말인데 그런 면에서 이렇게 많은 인물을 주저하지 않고 죽이다니, 정말 가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웃음)

사실 10대 커플의 죽음은 예상치 못한 순간이란 점에서 충격적이기도 한데, 용석의 비열함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적인 죽음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낭비적으로 느껴지는 죽음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선 그만큼 애정이 있기 때문에 죽인 셈이랄까. 아이러니하다. (웃음)

석우의 죽음은 그의 원죄를 생각한다면 명분이 있다. 다만 주인공을 죽인다는 점에서 망설임은 없었을까?

그래도 캐릭터들마다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선 허투루 동원된 느낌은 아니다.

에는 일종의 논리가 있었다. 보통 아포칼립스 영화들은 세대론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산행> 역시 캐릭터의 세대를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데올로기가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지만 유일하게 두 노인 여성을 상반된 이데올로기의 상징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 분들의 시대 자체가 이데올로기의 시대였으니까. 그 다음 세대는 성장 중심의 사회에서 자랐으니 석우와 용석 같은 캐릭터가 떠올랐고, 그 다음 세대인 10대는 일종의 희생양 노릇을 하게 된다. 그리고 수안이나 성경(정유미)이 임신한 아이는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일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가 쥐어야 할 당위에 더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인터뷰에서 마지막에 둘 다 쏴죽이는 게 연상호다운 거 아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 정도의 당위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당위가 뻔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지만 당위는 항상 뻔한 거니까.

마지막에 수안이가 부르는 '알로하 오에(Aloha Oe)'라는 노래는 이별과 재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까?

작가인 만화가 최규석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일단 가사 자체가 감성적이고 비하인드 스토리가 괜찮았다. 원곡이 하와이 왕조가 무너졌을 때 마지막 여왕이 만든 민요라는데 그런 사연이 마음에 들었다. <부산행>이란 아포칼립스 영화를 개인의 감정에 실어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 의도와도 맞아떨어졌다. 한 나라가 망해갈 때 재회를 약속하는 노래라는 점에서 종말론적인 상황을 다루는 이 영화의 엔딩톤과 어울리게 들렸다.

수안이가 아빠 앞에서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결국 아빠가 죽으니까 부르게 된다는 점에서 페이소스가 형성된다.

유사 좀비를 다룬 장르물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좀비에게 물린 부위에 따라 좀비가 되는 시간차가 있더라. 목을 물린 사람이 팔이나 다리를 물린 사람보단 확실히 빨리 변한다.

하지만 주인공에겐 우대 쿠폰을 준 느낌도 든다. 특히 석우는 인저리 타임이 긴 느낌이기도 하고. (웃음)

사실 좀비는 나올 만큼 나와서 좀비를 묘사할 때 어떤 시도를 해도 참신하다는 말을 듣기란 어렵다. 그런 면에서 <부산행>은 차별적인 좀비를 보여주겠다는 야심보단 일반적인 좀비를 충실하게 묘사하고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인상이다.

을 통해 처음 가미된 부분일 거다.

구제역 사태를 언급하는 오프닝 시퀀스나 근래의 시위 진압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방송 장면 등이 요즘 세태와 직결된 느낌을 준다. 심지어 벨소리로 들려지는 '오 필승 코리아'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리얼리티를 위한 의도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오는 8월 18일엔 <부산행>의 프리퀄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개봉한다. <서울역>에서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심은경 씨가 <부산행>의 첫 번째 좀비로 등장하는데 이걸 복선이라고 봐도 될까?

미끼를 던지는 건가.

<서울역>은 본래의 장기인 애니메이션인데 <부산행>이 흥행한 만큼 <서울역>으로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하는 관객이 많아질 수도 있다.

이유는?

은 스포일러가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는 영화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역>은 <식스센스>처럼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 란 식으로 말해 버리면 김이 샐 수도 있는 작품이라 이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 잘 모르겠다. 사실 올해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초청작으로 상영된 적이 있었는데 이동화 PD가 상영관에 가서 반응을 봤는데 관객들이 경악한다고 하더라. 나도 영화제 폐막식에 가서 반응을 보려 한다. ■

사진_장성용

을 비롯한 다양한 매거진에서 풍경과 인물 사진을 찍어 왔고, 현재는 색다른 콘셉트의 베이비 스튜디오 그린비(http://www.studiogreenbee.com)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_민용준

영화웹진 '무비스트'에서 영화기자로 밥벌이를 시작하며 'beyond'와 'ELLE KOREA' 에디터로 잡지를 만들고 기사를 쓰고 다양한 취재원을 만나 인터뷰를 해왔습니다. 주로 영화에 참견하고, 대중문화와 갖은 이슈에 종종 말과 글을 보탭니다. 한량의 삶을 추구하며 끊임 없이 놀고 먹으며 즐길 수 있는 노하우를 탐색해 왔으나 이번 생은 망했다는 결론을 얻고 나름대로 게으르게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