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전쟁 피해자들을 만나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야기다. 나는 국경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고서야, 팔다리가 잘려 몸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을 직접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적나라하게 펼쳐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훼손당하는 생명을 만났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고자 하는 이들의 소망을 느꼈다. 같이 눈을 맞추고 미소 지으며 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2016-07-27     국경없는의사회

박선영 구호활동가와 시리아 어린아이. Joosarang Lee/MSF

여튼 입사 초기, 스스로를 자극시키는 차원에서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이 표기된 지도를 모니터 아래에 붙여놓고 짬이 날 때마다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라 이름을 보고, 회의 때도 입 밖으로 꺼내보고, 이메일에도 한번 써보고 하다 보니 내겐 '다만 하나의 몸짓'과도 같았던 이 지역이 점점 꽃봉오리를 피며 의미 있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 아닌가! 가만 들여다보니 모든 꽃이 제각각이듯, 이 나라들도 복잡한 역사의 흐름을 타고 살아남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이 때 생각난 시가 바로 김춘수 시인의 '꽃'. 아마도 다들 한 번쯤 들어봤겠지만, 글을 이어가기에 앞서 다시 한번 적어본다.

그는 다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그에게로 가서 나도

우리들은 모두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마음으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는 현장 활동 소식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다음 단계를 찾게 됐다. 시에서처럼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아, 가서 내 눈으로 보고 싶다,' '나도 거기서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 요르단 출장 일정이 잡혔다. 한국인 활동가 세 분이 있는데, 이들의 활동사항을 렌즈에 담아오고 또 증언을 담아오는 업무였다. 시리아 전쟁의 폐해를 고스란히 담아와 이 같은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하는 의료 활동을 한국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생전 처음 중동 국가를 방문한 감회를 만끽할 틈도 없이, 도착 이튿날 곧바로 국경 쪽으로 출동했다. 도착하자마자 현장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를 만났다. 동행한 현지 동료가 물었다. 잘 지내냐고. 지금은 비교적 평화로운 것 같아 보인다고. 그러자 코디네이터는 "평화라는 단어는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폭풍전야 같은 불안감에 언제, 무슨 일이, 어디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놓지 않으련다고 답했다.

본래 람사 지역 요르단 주민들은 시리아인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불과 5년 전, 내전 발발 전에는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었고 시리아와 요르단 사람이 결혼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요르단 사람 중 친척이나 가족이 시리아에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출입증을 보여주고 건물에 들어가듯 자유롭게 왕래하던 이들은 전쟁이 발발하자 하루아침에 생활권이 반으로 쪼개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수술중인 이재헌 구호활동가(오른쪽). 환자는 스나이퍼 총에 다리를 맞았다. Joosarang Lee/MSF

기자로서 난 무언가를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화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 누가 한 말인지, 그 누구는 어떤 사람인지, 그 말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혹은 더 좋은 여행지를 찾기 위해, 더 싸고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을 발굴하기 위해, 사고가 발생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취재하면서, 대화하면서, 기사를 쓰면서 끊임없이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얻은 정보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렇게 기사를 쓰면서 어느덧 수많은 이야기꽃을 주변에 한 가득 키웠고 그 화려함에 도취돼 내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했다.

아이들 병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분위기는 더 밝았지만 여기서도 새로운 광경은 이어졌다. 포탄에 엄지손가락을 잃은 어린 시리아 소년이 침대에 앉아있다. 이 소년은 팔꿈치가 덜렁거리는 상태로 병원에 왔다. 완치가 어려울 것 같아 팔꿈치를 90도 각도로 굳혀버리려고 했는데, 기적적으로 조금씩 팔꿈치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90도 이상 팔을 펼 수 있게 됐다. 내가 병동으로 들어오자 아이들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나를 신기해 하면서도 경계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말은 서로 통하지 않았지만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금세 미소 지으며 사진을 더 보여달라는 표현을 한다. 눈으로, 표정으로, 몸짓으로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했던 이 시간이 뇌리에 깊게 남아있다.

포탄에 엄지를 잃은 시리아 어린아이의 손. Joosarang Lee/MSF

새롭게 만든 수술실을 둘러보고 있는 박선영 구호활동가. Joosarang Lee/MSF

시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써본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이들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었으면 한다.

이주사랑 | 국경없는의사회 언론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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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