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연설의 탄생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인 월요일 밤 미셸 오바마의 연설은 뜻하지 않은 대히트였다. 오죽했으면 '힐러리 클린턴이 못하고 있는 부분을 미셸 오바마가 채워줄 수 있다'면서 퍼스트 레이디가 힐러리 캠페인을 적극 도와야 한다는 말이 다 나올까. 미국의 대통령은 맞벌이 직업이다. 현대의 미국 대통령의 부인은 옛날처럼 예쁘게 웃고 손을 흔드는 현모양처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난 월요일 밤, 미셸 오바마가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기 퍼스트 레이디가 되려고 하는 멜라니아 트럼프가 얼마나 자격미달인지 비참할 만큼 잔인하게 보여준 연설이었다.

2016-07-28     박상현
ⓒASSOCIATED PRESS

1.

미국의 대통령은 맞벌이 직업이다. 현대의 미국 대통령의 부인은 옛날처럼 예쁘게 웃고 손을 흔드는 현모양처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난 월요일 밤, 미셸 오바마가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기 퍼스트 레이디가 되려고 하는 멜라니아 트럼프가 얼마나 자격미달인지 비참할 만큼 잔인하게 보여준 연설이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2.

우선 민주당 전당대회의 연사진은 첫날부터 화려했다. 데미 로바토, 에바 롱고리아 같은 유명한 라틴계 스타들은 물론이고, 여성 대통령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크리스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 말솜씨 뛰어나기로 소문난 앨 프랭큰 상원의원, 샌더스 지지자로 유명한 코미디언 사라 실버만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버니 샌더스가 늦은 밤, 마지막에 등장해서 첫날의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었다.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는 그 중간, 그러니까 워런 상원의원 바로 앞에 들어가 있었다. 말하자면, 헐리우드 스타들의 연설이 끝난 후 누구나 기다리는 무게 있는 연설(워런, 샌더스)로 가기 위한 적당히 무게 있는 "징검다리 연사"가 미셸 오바마였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미셸 오바마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미국인들이 그녀가 좋아서 버락 오바마를 뽑은 건 아니지 않은가).

3.

미셸은 남편을 대신해서 나온 미셸에게는 제한적이지만 분명한 역할이 있었다. 1) (후보처럼) 여성이었고 2) 2008년 선거 때만 해도 남편에 대한 힐러리의 공격으로 힐러리와 빌 클린턴을 아주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던 미셸이 힐러리를 지지했을 때 나올 효과는 각별하기 때문이다.

4.

퍼스트 레이디는 선출직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자신의 업적이나 주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큰 호응을 얻기는 힘들다. 미셸과 미셸의 연설문 작성자(이 사람의 이야기는 조금 후에)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었던 우리 딸들이 백악관에서 성숙해지는 시기(formative years)를 보내면서 훌륭하게 자랐다 → 앞으로 4년, 8년 동안 그런 시기를 보낼 지금의 어린아이들이 어떤 롤모델을 보면서 자라야 하겠는가? 즉, 연설을 듣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트럼프가 롤모델인가, 힐러리가 롤모델인가?"라는 자문을 하게 만든 것이다.

5.

이 접근법의 절묘함은 힐러리 클린턴의 모든 문제들, 즉 월스트리트와의 관계, 이메일 게이트 등의 이슈로부터 '여자'와 '직업정신' 그리고 '롤모델'로 청중의 관심을 돌린다는 데 있다.

6.

특히 "나는 매일 아침 노예들이 지은 집(백악관)에서 잠을 깬다"는 말은 청중들의 마음 속을 깊이 파고들었다. (미셸은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이미 그 말을 한 적이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이 가진 "routine"처럼, 연설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성공했던 표현들을 모아서 다시 사용한다). 세상은 발전하고, 우리 후세들은 우리보다 나은 세상을 살아야 하는데, 그런 발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개인적인 경험에서 끌어낸 것.

7.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문장을 가져온 것이 미셸의 솜씨일까? 내 생각에는 연설문 작성자가 발휘한 센스이다. 누가 작성했는지를 알면 더욱 분명해진다.

8.

힐러리가 후보지명을 받는 데 실패하자, 허뤼츠는 다음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당시 28세 신동으로 소문난 버락 오바마의 연설문 작성자인 존 패브로가 미셸 오바마에게 허뤼츠를 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뤼츠는 처음에는 미셸이 자신을 경계할 거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첫날 90분 동안의 만남으로 솔직하게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미셸의 스타일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뒤로 8년 동안 함께 일해온 것이다.

9.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연설문 작성자들이 작업하는 모습이다.

흥미로운 대목 : 버락 오바마는 마지막까지 문구를 뜯어 고치는 성격이고, 미셸 오바마는 연설 몇 주 전에 연설문을 완성한 후에는 여간해서는 고치지 않고 계속 연습해서 외워버리는 성격이라고 한다.

- 연설문과 동영상 링크

연설문 한글 번역본 링크

* 이 글은 2016 미국 대선 업데이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