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와 '박쥐의 각오'

한국은 선택할 수 없는 상황, 혹은 선택하지 않으려 하는 상황(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을 적대하지 않는 것)인데도 중국도 미국도 이제는 한국에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최종 선택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이번 THAAD 결정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필사적인 '박쥐의 각오'를 바탕으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칠 것이다. 그 몸부림이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의 길이라는 것이 괴롭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런 선택에 몰린 조상들의 결정을 음미하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고뇌했을지는 한번도 공감하지 못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2016-07-12     김병륜
ⓒU.S. Missile Defense Agency/Flickr

2000년대 이래 현재까지 한국 외교전략의 핵심 기본 기조는 '박쥐의 각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은 심지어 이 '박쥐의 각오'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기까지 했다. 대표적 문구는 2006년 1월 19일자 한미 양국의 공동성명이다.

The ROK, as an ally, fully understands the rationale for the transformation of the U.S. global military strategy, and respects the necessity for strategic flexibility of the U.S. forces in the ROK. In the implementation of strategic flexibility, the U.S. respects the ROK position that it shall not be involved in a regional conflict in Northeast Asia against the will of the Korean people.

결국 이 성명에서 지칭하는 동북아지역분쟁은 미중간의 충돌을 의미한다. 결국 미중간의 충돌에 한국이 원하지 않는 한 한국은 그 충돌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다시 한번 요약하면 2006년 성명의 의미는 한미군사동맹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대상으로 한 동맹이며, 그 외 미중간의 대결구도에서 한미동맹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이 같은 박쥐의 각오는 2006년 이후 한국 정권의 교체에 상관없이, 그리고 In the implementation of strategic flexibility 라는 전제에 상관 없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 박쥐의 각오는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한국 대통령이 참석한 것에서 보듯이 현 정부에서도 큰 틀에서는 변함이 없다.

심지어 북한 미사일 방어를 위한 미일 주도의 해상훈련에도 한국은 MD 참여로 오해 받을까봐 참가하지 않고 있다. 한미군사동맹은 오로지 북한을 대상으로만 작동하며, 중국을 대상으로 한 작동 여부는 2006년 성명의 유효 여부에 상관없이 여전히 "the will of the Korean people"에 달려 있는 것이 한미군사동맹의 적나라한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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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의 THAAD 배치를 용인할 것인가? 이제 O

그 외 위에서 보듯이 심지어 한국은 중국과 관련이 없는 사안(베트남전 종료 후 전투임무를 위주로 한 해외파병)에서도 미국에 협조하지 않았다. 한국은 오로지 북한의 침략을 방어하는데 있어서 미국이 지원해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 외 비전투임무를 위주로 한 해외파병에서만 미국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한국을 놓고 Alliance or Reliance? 혹은 Is Korea a Reliable Ally? 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에 있어 한국은 이상적인 요충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GPR을 기준으로 한국은 독일, 일본과 동급의 MOB(Main Operation Base)이다. 미국 영토를 제외하고 이보다 등급이 높은 지역은 영국(미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HUB로 간주)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에 미국이 주둔한 현실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미국이 원하는 이상적인 요충지는 섬이어서 해·공군만으로 방어가 가능하면서도 대륙에 근접해 유사시 병력을 투사할 수 있는 일본과 영국 같은 곳이다.

요충지로서 한반도가 지닌 제한요소에도 불구하고 한국도 경제적·군사적으로 상당한 국력을 가진 주요국가 중 하나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런 한국을 스스로 포기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안보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대처다. 한미동맹이 북한을 대상으로만 작동하고, 중국을 대상으로 전혀 작동하지 않을 경우 Alliance or Reliance? 혹은 Is Korea a Reliable Ally?라는 의문은 언제인가 결국 다시 미국에서 제기될 것이다.

한때 장관 후보로도 거론되던 거물급 중국 안보 문제 전문가인 H교수를 만났을 때, 내가 물었다. "국내 중국 전문가들이 중국이 미래에 한국을 위협하는 상황을 전혀 가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 분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그분들이 큰소리친 지 8년, 4년도 되지 않아 그분들 전망에 더 이상 신뢰를 보낼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깝다. 중국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안정적으로 한미동맹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 경계선이 어디일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한미동맹은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며, 충격을 흡수할 완충공간이 많다는 한국 일부의 생각은 착각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기가 쉽지 않다는 건 한국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박쥐의 각오'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국제관계에서 좀처럼 신뢰를 보여주지 않고 있는 중국만을 선택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더구나 중국은 청일전쟁 패전까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미국 등 외국에 주재하는 조선 외교사절의 철수까지 요구했던 나라다.

이 글에서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쓴 취지를 조금 더 보충설명하면 이렇다.

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취지가 아니다. 중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최소한 한미군사동맹이 대(對)중국적인 요소를 가지지 말라는 것이고, 반대로 미국 일부에서 적어도 대(對)중국 측면에서 한미동맹은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최종적 선택은 결국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동맹에 대(對) 중국적 요소를 포함시키지 않는 정책을 계속 유지하느냐, 아니냐의 선택일 것이다. 우리가 끝내 대중국적 요소를 포함시키지 않는 정책으로 일관할 경우에도 한국의 의도와 달리 한미군사동맹도 사실상 형해화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문제는 결국 선택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