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개가 더 부드럽다

"회사에서 잘나가는 분들 보면 극우 성향을 거침없이 드러내요. 야당은 종북 좌빨이고 노조 같은 건 없애버려야 한다고... 그래야 인정받고, 출세한다는 걸 알고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돕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한 직장인의 증언이다. 생각은 머리가 아니라 일상에서 나온다. 교육부 간부가 '1% 대 99%'로 나눈 건 신분제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016-07-13     권석천

2주 전, 저녁 늦게 취업준비생 다섯 명과 치킨집에 있었다. "잠이 안 와요. 자다가 자꾸 깨고...." 생맥주 한잔하다가 한 친구가 불면증이 있다고 하자 "저도 그런데" "저도 그런데"가 이어졌다. 그 일치감이 그들도 어색하고 신기한 듯했다.

구조조정 중인 곳은 조선업만이 아니다. 젊은이들도 꿈을 구조조정하고 있다. "민중은 개·돼지다.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는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 기사에 울컥했던 건 발언의 반사회성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불면의 밤을 이야기하던 젊은이들의 얼굴이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잘나가는 분들 보면 극우 성향을 거침없이 드러내요. 야당은 종북 좌빨이고 노조 같은 건 없애버려야 한다고... 그래야 인정받고, 출세한다는 걸 알고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돕니다."

자식 세대의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은 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 비율은 2009년 48%에서 2015년 32%로 급락했다(고려대 이왕원·김문조 연구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1조는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현실부터 위헌이다.

이렇게 신분제가 공고화돼가는 사이 돈 없고 힘없는 이들, 젊은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끝없이 달리고 있다. 정신없이 달려야 새 세상을 꿈꾸기보다 기존 체제에 순응하게 되니까. 그래야 더 부드러워지니까. 왜 달려야 하는지 물음을 던질 때, 잠시라도 달리기를 멈출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된다.

『채식주의자』는 말한다.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나도 채식주의자가 돼야 하는지 고민이다. "개·돼지" 발언이 나오는 사회가 서글퍼서.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명치에 걸려 있는 거 같아서.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발언대에 서 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교육부가 '개돼지' 발언 나향욱 파면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