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받은 하늘을 가진 지구인

별은 뚜렷이 잘 보이겠지만 화성의 밤하늘에는 지구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바로 달이다. 우리가 가진 저 달은 모행성에 대비해 태양계에서 가장 크다. 그래서 태양과 겉보기 크기가 같기 때문에 낮과 밤의 하늘을 균등히 양분하며 우리들에게 하늘에 대한 큰 호기심과 영감을 불어넣어 왔다. 하지만 화성의 달 포보스와 데이모스는 지름이 수십㎞에 불과한 일그러진 두 개의 돌덩이일 뿐이다. 화성 표면에 가깝게 있기 때문에 비교적 커 보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가 같을 수는 없다.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온 지 불과 8년 만에 인류가 달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저 거대하고 느릿느릿한 달이 역사 전체에 드리운 무게와 의미가 끌어내는 추진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2015-04-19     원종우

영겁에 이를 만큼 많은 별 가운데 하늘을 볼 수 있는 지구에서 태어난 건 행운이다. 해, 달, 별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과학 발전을 이끌었다. 달과 지구의 거리가 35만7205㎞로 가까워지는 '슈퍼문'이 되기 이틀 전인 2013년 6월21일 경기도 안산의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안산/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우리가 우주와 그 속의 지구, 그리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진실을 어느 정도라도 깨달은 건 오래전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빅뱅으로 생겨났다는 걸 알게 된 것은 고작 수십년 전이고 우리 은하 바깥에 수많은 은하를 품은 거대한 공간이 있음을 눈치챈 것도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 500년 전 코페르니쿠스가 주창한 태양중심설은 진실을 꿰뚫어본 선구적인 과학이론이었지만, 말 그대로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그릇된 주장이기도 했다. 태양이 지구를 돌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옳았지만 그 이상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천동설도 과학의 최선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고대 그리스인들은 중세인들과 달리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물론 그 크기마저 알고 있었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그들이 생각한 우주는 제아무리 커봐야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정도의 크기인 태양과 달, 그리고 밤을 치장하는 '반짝이'에 불과한 별들이 붙은 천구라는 이름의 껍질이 인간과 생물이 사는 터전인 지구를 둘러싸고 회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식이면 우주에서 의미 있는 곳은 지구 하나뿐이다.

그렇게 그들은 하늘에서 신들과 사람, 동물의 모습을 발견해 별자리를 그렸고, 나아가 '혜성이 자미궁을 침범'하는 현상이 지상의 우리 삶과 어떻게든 관련돼 있을 거라고 여겼다. 이 모든 것에는 지구와 인간이 우주 속에서 유일하고도 핵심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옳고 그른 과정들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옳고 그름 자체가 아니라, 우리 인류가 끊임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그 비밀을 알아내려 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방대한 우주와 수많은 별에 대한 놀라운 지식을 갖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가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진화된 생물이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셀 수 없으리만치 오랜 세월에 걸쳐 매일 하늘을, 지구 바깥을 올려다보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런 일을 우주 속 모든 생물들이 누리지는 않을 것이다.

에는 6개의 해가 뜨는 행성이 등장한다. 이 태양들은 같은 때 뜨고 지지 않기 때문에 이 행성에는 어두운 밤이 사실상 없다. 단지 천년에 한번씩 우연히 해가 모두 지는 단 몇 시간이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밤의 어두움이 평생 한번도 겪지 못한 공포이자 충격이고 그 순간 홀연히 나타난 수많은 별들조차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곳에서는 설사 소설 속에서처럼 어둠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불을 질러 문명이 멸망하지는 않더라도, 밤하늘 너머 수많은 별들이 던져주는 우주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감을 가질 수 없다.

지구와 가장 가깝고 크기도 비슷한 금성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만약 금성에 사는 생물이 있다면 어떨까? 400도가 넘는 표면 온도에도 불구하고 물 대신 황산을 통해서 생명활동이 전개될 수 있었고 지구만큼의 오랜 진화를 통해 지적 생명체가 출현했다고 가정해 보자. 가능성은 낮지만 결코 그럴 수는 없다는 증거도 없다. 하지만 이 금성의 지적 생명체들이 바라보는 하늘은 지구의 100배에 달하는 대기압을 만들어내는 두꺼운 이산화탄소의 구름으로 철저히 은폐돼 있다. 저 구름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은 품겠지만, 그 뒤에 다른 '무엇인가'가, 그것도 거의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아주 어려울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의 하늘에는 뿌연 태양만 있을 뿐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낼 아무것도 떠 있지 않다.

지구의 달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암석 덩어리에 불과한 화성의 달 포보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엔켈라두스인'은 터져버리고 말 것

생명 탄생의 조건으로 많은 것이 이야기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액체 상태의 물이다. 우리 지구의 경우를 봐도, 태양빛이 전혀 없는 곳에도 물만 있다면 생명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위성들의 얼음 아래 수많은 동식물이 살아 활개치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지적인 생물로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똑똑한 생물이 산다 한들 이런 곳에서 하늘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이나 영감이 싹틀 리 만무한 일이다. 얼음 밑 물속에서 찬란한 문명과 도시를 건설하거나 부력의 법칙 같은 그들 나름의 과학법칙을 발견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세상 바깥에 전혀 다른 법칙에 의해 지배받는 무한에 가까운 공간이 펼쳐져 있을 거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우주로 진출한다 한들 이들에게는 진공이라는 무시무시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인간에게도 진공의 우주는 위협적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고작 1기압의 대기압에 맞춰 진화해왔을 뿐이다. 그래서 폴 버호벤의 영화 <토탈 리콜>의 마지막 장면에서 잘못 묘사한 것과 달리, 완전한 진공의 무압 상태에서도 인간의 몸은 쉽게 터져 나가지 않는다.

이런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들의 우주선과 우주복은 언제나 그들이 사는 세상만큼의 압력을 몸에 제공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의 것보다 적어도 수십배 이상 크고 두껍고 무거워야 하는데, 크기와 두께와 질량은 하나같이 우주여행을 극단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하늘 장벽'이 없는 행운

처음 뭍에 올라온 인류의 먼 조상, 그 첫날부터 우리는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지상에 살며 천상을 바라봤다. 누구라도 고개만 들면 수경㎞의 공간과 수만년의 시간을 건너뛸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초월을 꿈꾸게 하는 축복받은 행성에서 태어났고, 긴 세월 끝에 우리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급기야 그 속으로 나아가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