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에이전시는 한강의 소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2016-06-15     김수빈
ⓒSubin Kim

맨부커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만의 공이었을까? 배수아, 이응준, 한유주 등의 한국 작가들의 해외 판권을 대리하고 있는 영국의 문학 에이전시 대표는 한강의 수상이 번역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요인 덕택이었다고 설명한다.

서울국제도서전 참가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켈리 팰코너 아시아 리터러리 에이전시 대표는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 인터뷰에서서 번역가-편집자-원작자 간의 긴밀한 소통은 물론이고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던 시점에 출간되었다는 '타이밍' 또한 한강의 수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14일 오후, 강남의 한 호텔에서 팰코너 대표를 만나 한국문학과 번역의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어떻게 해서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는가?

25년 전, 미국 공군에서 복무하면서 국방외국어대학에서 한국말을 배웠다. 제대한 이후 나는 런던에 있는 출판사의 편집자가 됐다. Weidenfeld & Nicolson이라는 명망있는 출판사로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낸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10년 동안 문학 픽션 및 논픽션 부문의 편집을 하면서 문학 번역 작업에 대해서도 배웠다. 내가 퇴사한 이후 그곳에서 신경숙의 작품도 출판했다.

아시안 리터러리 리뷰의 문학 에디터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래서 갑자기 아시아 문학에 대해서 익히게 됐다. 나를 비롯한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아시아의 멋진 작가들을 발굴하여 서구의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일을 했다.

현재 대리하고 있는 한국 작가에는 누가 있나?

데보라 스미스의 초기 번역작을 편집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아시안 리터러리 리뷰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읽을 수 있다. 오래 전(2012년)이었고 당시 스미스는 신예 번역가였다. 당시에는 배우는 단계였다고 스미스 스스로도 인정했었고, 이제는 번역가로서 훨씬 성장했다. 데보라의 번역은 다른 번역가와 달리 보다 창의적인 편(의역)이다.

한강의 소설이 수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데보라 스미스, 그리고 번역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렇지만 편집자의 숨은 공로도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 이전에도 '채식주의자' 번역 출간 시도가 있었다. 자넷 홍이라는 번역가가 번역한 것인데 나는 스미스와 홍의 번역본 두 개를 모두 읽어봤다. 둘 다 매우 훌륭한 번역이었다. 그렇지만 데보라의 번역은 보다 현대적이고 원문과 비교하면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데보라가 ('채식주의자'를 낸) 그랜타의 편집자와 친구였다는 것도 도움이 됐다. 편집자와의 긴밀한 협의와 한강의 승인 아래 편집이 이루어졌었다.

'채식주의자'가 그 자체로 훌륭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채식주의자'를 성공시킨 요인에는 운과 타이밍을 비롯한 여러 가지가 있었다.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국제관에서 열린 2016 한국문학 세계화 포럼 초청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강과 스미스가 맨부커 상을 수상하면서 원문에 구애받는 쪽보다는 더 창의적인 번역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논의가 문학 번역의 문제 자체보다는 영어와 한국어의 지위(권위)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보다 상위에 있는 언어(영어)는 원문을 그대로 살린 번역을 중시하는 한편, 하위에 있는 언어(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에는 영어로 이해하기 쉬운 것만 강조하다가 오히려 원문의 의미를 퇴색시키지는 않을지, 아무리 해외에서 인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리 되면 그 의의가 바래지 않을까.

한강의 경우('채식주의자')는 좀 다르다. 그 소설집은 9년 전에 나왔다. 9년 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설을 쓴 것이다. 알다시피 한국에선 모든 게 빠르게 변한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한강의 소설이 지금 읽으면 꽤 오래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도 마찬가지다. 그 10여 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내가 한국에 왔을 때 카페에서 영어로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차를 주문하는 게 불가능했다.

나는 스미스가 젊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데보라 스미스는 이제 28세다. 열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번역가로서의 자질도 타고 났지만, 번역계에 새로 들어왔다는 것도 중요하다. 젊을 때는 과거의 법칙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저 돌진할 뿐이다 (웃음). 이런 측면이 작가로서의 한강과 그의 소설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기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을 것인데 (웃음) 한국문학이 세계에 더 많이 알려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젊은 작가들이 더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인가?

내가 '젊은'이라고 말할 때 이는 숫자로서의 나이를 뜻하진 않는다. 이를테면 천명관을 보라. 그는 50대이지만 매우 젊은 분위기를 내고 있다. 그는 전통주의자가 아니다. 사실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아시아에서 연장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는 것은 잘 알고 있고 나도 이를 존경하지만 연배가 있는 작가들을 밀면 젊은 세대를 희생하게 된다. 왜 독자들이 누군가 50년 전에 쓴 글을 읽고 싶겠는가?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보다 넓은 독자층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보다 젊은 작가들을 밀어줘서 우선 한국문학 자체에 관심을 갖게끔 해야 한다.